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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뷰티 Oct 10. 2023

2.대화가 잘 통해서 한 결혼, 잘 통했었나?

T와 F의 환장의 만남 

결혼 적령기 회사 후배들과 점심 식사를 하다보면 종종 나오는 질문들이 있다.

"소개팅을 해도 그 사람이 결혼할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선배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처음에 만나서 대화를 했을 때 딱 느낌이 오더라구! 그 뒤로 만나면서 대화가 편하고 잘 통하는게 

  느껴졌어"


물론 그들의 질문에 어떠한 답이라도 해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진심도 한 80% 넘게 담겨 있었다.

그랬다. 나는 그가 편하고 대화가 잘 통해 결혼을 선택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나니 느껴졌다. 우리 대화가 잘 통했었나?


1.아름다운 대화에서 치열한 대화로!


지친 직장생활 중 나의 삶의 활력소는 남편과 주말마다 함께 하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데이트를 하면서 예쁘고 아기자기한 카페도 가고, 특이한 영화관도 가고, 유명한 맛집들도 찾아다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대화였다.


나 : "와! 여기 진짜 예쁘다"

남편 : "그렇네, 여기 진짜 예쁘네"


나 : "이런 음식이 있다고, 어떻게 여기를 찾았어? 진짜 맛있는걸"

남편 : "그렇지. 여기 진짜 맛있지. 다음에 또 와보자.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는거 같아"


내가 '예쁘다, 좋다'고 하면 곁에서 같이 좋아해주고 공감해주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혼자서 어디를 다니는 것 보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예쁜 건 함께 즐기는 이런 삶이 만약

결혼까지 이어진다면 이런게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결혼이 이런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결혼을 하고 데이트를 나가서 그런 순간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결혼 후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좋은 순간을 함께 나누고 행복해 하기 보다 수많은 분노와 격정의 감정을 참아내고 이겨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대화도 달라졌다. 


나 : "아니 왜 화장실 변기에 쓰레기를 버리고 물을 안 버리는거야?!"

남편 : "아니 왜 설거지 뒷정리가 이것밖에 안된거야?"


생활습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분노의 대화들이 이어졌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 좋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도 나름 결혼 전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주변에서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최대한 예쁘고 좋게 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그건 오래 가지 못했다. 다른 습관과 행동 양식, 생각의 방향까지 도대체 하나라도 맞는게 있는 사람인지 의문 마저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짜증내는 남편의 말투에서 나 역시 착하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2.극 T와 극F의 환장의 만남 

 

생활 습관이나 성향의 차이는 그렇다 쳤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연애 때 내가 아는 남편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다정하게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좋은 일에 같이 좋다고 해주고, 예쁜게 보이면 함께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편은 누가 납치해 어디 옷장에 가둬버렸나보다. 그리고는 옷장 밖 나니아 연대기 세상으로 잘못 발을 디뎌 지금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아직도 의구심이 든다. 


그의 극T 성향은 결혼하고 서서히 드러났다. 


나 : "회사에서 이래서 짜증나는 일이 있었어. 아니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가봐."

남편 :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건 아냐. 그건 너의 일반화의 오류야."

나 : "물론 나도 알고 있지. 그치만 지금 여기서 핵심은 내가 당한 일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난다는건데 거기에 

        공감 좀 해주면 안돼?" 


나에게도 일어났다. TV나 회사 유부녀 선배들에게서 들은 그 뻔한 이야기가.

회사에서 화가 난 일이 있어서 남편에게 공감 좀 해달라고 욕 좀 했더니, 내가 욕한 직급의 사람 편을 든다.

차라리 해결책을 알려주면 말이라도 안한다!

너무 뜬금포로 회사 사람 대변인이 되어서 회사 사람을 두둔하고 있다. 

그 사람에게 따로 돈이라도 받은게 아닌지 계좌조사라도 들어가야 할 판이다. 


갑자기 서러워졌다. 내가 어거지로 주장하는 일이 아니었다. 

평소 남편이 회사 사람 때문에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내면 옆에서 '아니!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하며 화를 내줬던

내가 바보 같아 보여 더 서러웠다. 


그 뒤로 단단히 화가 나서 더 이상 회사 욕이나 짜증을 남편 앞에서 일체 내지 않는다. 

그치만 그는 항상 나의 기대치를 뚫고 한발 더 나아간다.


저녁에 함께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가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연예인이 태국, 캄보디아 등에 방문해 동남아 길거리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맛을 평하는 코너였다.

배도 슬슬 고플 저녁 9시였기에 그날 저녁이 부실해서 그런지 더 맛있어 보였다. 


나 : "와! 진짜 맛있겠다. 가격도 엄청 싸네. 태국 음식 생각보다 괜찮네"

남편 : "저거 생각보다 맛없어. 위생도 나쁘고 별로야 별로."

나 : "흠..(일단 무시하기로 함) 오! 캄보디아 음식도 괜찮네. 가격도 싸고 우리나라 음식이랑도 비슷해 보여서 

        달콤해 보인다."

남편 : "별로일 거 같은데?! 저기 화면에서 저렇게 나오는거지 실제로는 맛도 없고 네맛 내맛도 아닐 것 같구먼"

나 : "(참다 참다 부들부들) 아니 직접 가서 먹어봤어!!! 왜 옆에서 산통깨!!!"


남편도 순간 민망한지 헛웃음을 짓는다. TV에 나오는 음식마다 별로라고 하니까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저러니 참고 참다 빡이 친다. 본인도 직접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산통을 깬거 같으니 허탈 웃음을 짓는다. 


분명 공감도 잘해주고 대화도 잘 통하는 줄 알고 결혼했는데 이렇게 기본적인 대화마저 안 통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물론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곗지만 이건 내 입장에서 쓴 글이니 억울하면 본인도 글을 써라! (안 쓸걸 알고 쓰는 이야기다.)


결혼하면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는걸까?

아니면 진짜 누가 우리 남편을 납치해서 화성에라도 갖다 놓은 것인가?

2년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나름 매의 눈으로 지켜봤던 나였는데 결혼은 그런 매의 눈이 사실은 

실눈 뜬게 아니냐고 되묻게 만든다. 


연애에서 '결혼'이라고 단어만 바꿨을 뿐인데 일주일에 1~2번 만나는 걸 매일 아침에 잠깐 보고 같이 잠을 자는 것 뿐인데 이렇게 사람을 바꿔놓나보다. 

함께 있고 싶어 한 결혼인데 이제는 '제발 어디 좀 안 나가나?'는 마음으로 바꿔놓다니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가끔 되묻는다. 

대화가 잘 통해서 한 결혼인데, 우리 지금 대화 잘 통하는거 맞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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