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자는 어디에서나 일한다
귀자는 작은 기자다.
작년 언젠가 어느 신문사에 발을 붙이고 섰다.
귀자는 매일 신문을 만들어야 했는데, 아직도 작은 기자인 귀자는 매일 뭘 쓸지 보고하는 일이 힘에 부쳤다.
팀장은 쓸만한 거리를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쓸만한 거리가 무엇인지는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귀자는 매일 담당하는 경찰서에서 살인사건이 났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 확인이라는 것은 확인이라는 단어를 달기에도 조금은 민망한 작업이었다.
귀자는 휴대폰 창에 경찰서 이름을 검색하고 새롭게 뜬 뉴스가 있는지 새로고침을 했다.
조간 신문이 나오는 아침에 한 번. 석간 신문이 나오는 낮에도 한 번.
검색창에 무엇이 걸리면 귀자는 또 한 번 확인을 했다.
"과장님. 방금 보도나온 거 물어보려고 전화드렸어요. 날짜랑 혐의는 맞나요?"
아니면
'과장님. 귀자일보 귀자입니다. 보도 사건 물어보려고 전화드렸어요. 바로 전화 부탁드려요.'
귀자는 그런 아침과 그런 낮을 보내고 있었다.
귀자가 일한 이래로 한 번도 감염병이 멈춘 적은 없었다.
신문을 만드는 기자인 귀자는 어디 나가지 않고 전화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귀자는 어디에서나 신문을 만들었다. 귀자는 때때로 집에서 기사를 썼다.
귀자의 첫 휴가 때 처음 만난 제주의 풍경 속에서 귀자는 쓸만한 거리를 찾아 한 달 뒤에 기사를 썼다.
주말 시작 때도 귀자는 기쁘지가 않았다.
다가올 월요일에 무얼 써야할지 모르겠어서 가슴이 헙 하고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귀자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그런 거였다.
귀자에게는 출근할 곳이 없다는 것.
귀자는 매일 밤마다 머리를 굴렸다.
내일은 어디 경찰서에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하지,
그 과장은 저번에 밥을 먹었고 그 팀장은 내 전화를 안 받았는데.
경찰 대신 시민단체 사람을 만나볼까.
저번에 그 사람 만나서 아무 거리도 못 찾았는데 어쩌지.
귀자의 일에는 끝이 없다는 것.
귀자는 매일 아침마다 머리를 또 굴렸다.
오늘 쓸 기사가 없는데 통신에 살을 붙여야 하나.
팀장이 분명 왜 써야하는지를 물을텐데.
통계가 새로운지 사례가 단독인지를 확인할텐데.
귀자는 둘 다 아닌 기사를 쓸 수 없었다.
그럼 귀자가 하루 내지는 일주일을 공들인 사람들의 이야기-때로는 눈물. 때로는 고통-이
지면 아래서 땅으로 스며갔다.
귀자가 일한 시간도 함께 스며갔다.
귀자는 입사 2년차에 그런 고민들을 안고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귀자는 이 글을 금요일 밤에 쓰기 시작해 일요일 밤에야 마무리짓고 있다.
내일 아침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글을 쓸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귀자는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은 알 수 없는 마음을 꼭 꼭 담아 타자를 치고 있다.
그렇게 귀자는
작은 기자 귀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