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자일기] 2. 귀자는 살인범을 만난다

끓는 귀자, 차가운 작은 기자

by 귀자

오늘, 작은 기자 귀자는 살인범을 보고 오는 길이다.

자의 삶은 단 한번도 평탄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귀자가 누구를 때리거나 죽이는 사람과 가까워질 기회가 있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생 귀자는 때로 폭력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는 날들을 보내긴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그토록 세세하게 들어볼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초등학생 때 보던 뉴스 화면은 귀자와 이억 광년 만큼 떨어져 보였는데.

어느새 그 화면 안으로 들어가있는 귀자는 귀자를 보고 소소하게 놀랐다.

하지만 적응의 동물이라는 종의 특성은 귀자를 거기에 녹아들게 했다.


각종 사건과 사고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귀자는 종종 살인범을, 절도범을, 강간범을 만났다.

운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운 데서 듣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다.

자꾸 그런 일상이 반복될수록 귀자는

피해자 생각에 아리던 마음이 괜찮아지고,

폴리스라인 아래 밴 핏자국을 보고서 떨리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CCTV 화면을 보며 질끈 감던 눈을 아주 조금 뜰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작은 기자 귀자는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여 큰 기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내심 적응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귀자에게 끔찍한 사건 이야기를 듣는 일이 일-업-로 다가오기 시작한 때였다.

귀자는 오늘 여러 사람을 죽인 피고의 공판을 챙기게 됐다.

피고의 범행은 송치도 전에 세상에 꽤 세세히 드러났기 때문에

공판에서 아주 새로운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형사법정 3층에는 누군가 마련해준 귀자의 자리가 있었고,

귀자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를 타자로 일일이 쳐서 기록했다.

그것이 귀자의 일이었다.

3층의 그 법정에 귀자와 같은 일을 하는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가 증인의 증언과 함께 흘러가던 시간에

귀자는 그 일들이 모두 아주 평평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늘어진 공판이 2시간쯤 지나 손목과 손가락에 저릿한 느낌이 올라올 때쯤,

검사는 피고가 살해한 피해자 가족을 증인으로 앉히고 신문하기 시작했다.


증인은 신문 초반 검사의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피해자의 삶에 대한 성실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말할 때,

증인은 목소리를 떨고 약간의 울음을 내비쳤다.

신문이 끝으로 달려갈 때쯤,

피해자가 증인에게 어떤 가족이었는지를 설명해야 했을 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증인이 피해자의 생전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떠올려야 했을 때,

증인은 자리에서 큰 소리로 몸을 떨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피고를 똑바로 쳐다보며 생과 사의 기로에 다른 사람이 서있어야 한다고 크게 소리지르기도 했다.

그 울음은 아주 크게 떨리고 격렬한 것이어서,

누군가의 부축을 받지 않고서 그는 증인석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것은 귀자가 기자가 아닐 때는 생각하다가,

기자가 된 후 어느 순간부터 잠시 잊고 있던 아주 큰 한 부분이었다.


귀자는 그 순간

귀자의 대각선에 앉은 피고가 대체 어떤 너비를 가진 삶을 짓이기고 밟아 그 자리에 섰는지를

등골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각인했다.

귀자는 그 순간

귀자가 단순히 기록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괸 눈물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 섰는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새겼다.


귀자는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생각했다.

작은 기자로서의 귀자를 생각하느라 잠시 일의 무게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고.

식은 채로 사안을 바라보는 것은 귀자의 업이 분명하지만,

끓는 마음이 그 시작의 단계에 있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분명했다.


귀자는 그렇게 새로운 하루를 새겼다.

불평 많던 귀자의 일상에도 어느덧 새로운 배움이 한 줄 늘어갔다.

귀자는 배부른 채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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