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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것저것 Jul 19. 2022

[月記] 2022년 6월

정말이지 풍부했던 달

#1.

공부란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라는 말이 무척 맘에 든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동기부여가 되고, 이것저것 배우려는 나에게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것만 같다. 2022년 6월은 내 삶이 좀 더 선명해지고, 다채로워지는 시기였다.


#2.
테니스를 다시 시작했다. 대학생 때 <테니스 초급>이라는 수업을 들은 후로 언젠가 제대로 배워야지, 배워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취미를 작년 이맘때 시작했었다. 포핸드, 백핸드, 그리고 발리까지 배우며 한창 재미를 느껴갈 때 쯤 회사 업무가 바빠지면서 아쉽게도 그만뒀었다. 게임 한 번 제대로 못 쳐보고 어디 가서 테니스가 취미라고 말하기도 무안할 정도로 짧은 배움이었기에 꼭 다시 쳐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드디어 시간이 생겨 치게 되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몇 개 있다. 이전에 다니던 곳이 아니라 집 근처 새로운 생긴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10분 정도 덜 걸리는데, 걸어 다니기에 체감상 무지 가까운 느낌이다. 레슨 시간도 평일 저녁에서 새벽으로 옮겼다. 여름이기도 하고,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개운해서 지금까지는 만족하고 있다. 전날 회식하거나 하면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는 건 큰 단점... 강사님 스타일도 180도 달라졌다. 여자/활발/베테랑 강사님께 배우다가, 남자/차분/대학생 강사님께 배우고 있다. 초보자 가르치는 게 뭐가 다를까 싶지만, 다른 점이 좀 보여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가장 좋은 변화는 '게임 데이'가 있다는 것이다. 2주에 한 번 수강생들을 모아서 실제 코트에서 게임을 주최하는데, 이게 정말 재밌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섞여서 복식 경기를 했는데, 잘 못 치는데도 너무 신나고 개운했다. 역시 스포츠는 실전이 최고인 것 같다.

윔블던, 녹색과 보랏빛

 6월은 테니스인에게 의미 있는 달이다. 테니스 대회 중 최고로 꼽히는 윔블던이 개막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조코비치와 권순우 선수의 윔블던 1R 경기가 있었다. 3:1로 조코비치가 이겼고, 권순우 선수는 탈락했다. 조코비치와 첫 라운드에서 붙은 건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나쁜 걸까. 윔블던처럼 권위 있는 대회에서 위대한 선수와 붙은 건 큰 경험이지만, 반대로 대진운이 좋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권순우 선수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테니스 대회를 보다 보면 나도 저 자리에서 뛰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말도 안 되지만, 상상이니까 뭐! 그래도 언젠가 동호인 대회라도 나가보고 싶다 :)


#3.

<귀를 기울이면>, <바다가 들린다> 두 편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봤다. 요즘은 노래를 유튜브에서 많이 듣는데, 대부분의 감성 인디 음악 플레이리스트의 썸네일이 일본 애니메이션 장면이다. 무슨 장면인지도 모르는데 어쩜 그리 찰떡같던지, 노래의 감성을 더욱 진하게 해준다. 그렇게 노래를 듣다가 위 두 작품이 썸네일로 주로 쓰인다는 걸 알았다. 넷플릭스에 있어 바로 봤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잔잔하면서도 솔직한 성장물, 완전히 내 감성이었다. 10대들이 성장해나가는 걸 보는 게 왜 이렇게 재밌는 건지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것 같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도 역시나 배울 게 있어 항상 찾게 된다.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보고 다시 노래를 들으니 장면 장면이 떠오르면서 감성이 더 풍부해진다. 노래와 애니메이션을 매치시키는 유튜버들에게 박수를 보내 본다!

바다가 들린다

 여운이 진하게 남아 지브리의 다른 작품들도 기웃거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너무 유명한 작품은 봤지만, 아직도 안 본 작품이 많았다. 얼른 보고 나서 감상을 남겨봐야겠다. 이렇게 보다 보니, 일본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요즘 일본어 쓰임이 줄어들고, 회사에서도 일본어 어학 등급은 인정해 주지 않는 걸로 바뀌었다. 그치만 여전히 일본 컨텐츠를 접하는 빈도가 엄청 많은 것 같아 배워 두면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찾아보고 영상도 보고 있는데... 일단 히라가나부터 외워야겠다 ㅠㅠ 



#4.

 클래식에 관심이 생겼다. 아직 클래식이 취미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를 찾아보고 또 클래식을 듣고 있다. 사실, 작년에 한 번 클래식 바람이 불긴했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여운이 남았었는데, 마침 2021 쇼팽 콩쿠르가 개최했고 급 관심이 생겨 피아노 레슨도 받았었다. 물론 실력이 늘지도 않고,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금방 흥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그런데 최근에 지브리 작품을 보고 새로운 작품을 찾던 중,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다시 보게 되었고, 작년과 똑같이 클래식에 빠지게 되었다. 그 사이에 조금 성숙했는지 전과 달리 구체적으로 곡들을 찾아 듣고 있다. 애니메이션에도 나오는 곡인 쇼팽 'Etude Op.25-5 : 추억, 회상'과 'Etude Op.25-11 : 겨울바람'을 자주 듣고 있다. 이번관심은 얼마나 갈까?


Charles Richard-Hamelin – Etude in E minor Op. 25 No. 5 (first stage)


#5.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정말 좋아한다. 내 인생 최고의 곡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얼마 전,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플레이리스트가 넘어가서 이 노래의 전주가 나오는 순간 모든 걸 멈추고 노래를 들었다. 삼사분 되는 시간 동안 온전히 곡을 들었는데, 주변이 온통 이 노래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검정치마 - Everything

 6월의 마지막 날, 트레바리 X 검치단 이벤트에 참여했다. 클럽하우스에서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검치단이란 모임이 있다고 한다. 이 검치단의 단장님이 트레바리와 콜라보를 해서 기획한 이벤트인데.. 전문가의 해설과, 좋은 스피커, 그리고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정말 기대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만족스러웠다. 날 것의 느낌이 묻어나는 <201>을 들을 때는 소위 덕후들이 왜 이 앨범을 가장 명반이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Don't you worry baby>는 아픔이 많은 곡이라 하는데... 조휴일이 꿋꿋이 음악을 계속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3집에 관한 해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운 사랑에 관한 <Team baby> 추악한 사랑을 다룬 <Thirsty>, 두 가지 모두 사랑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검정치마. Part 3에선 어떤 모습의 사랑을 보여줄까? 음악 듣는 것도 좋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메모장에 "음악과 영화, 그리고 그 표현에 대하여"라고 적어두었는데... 언젠가 이에 관해서 글을 쓸 날이 오면 좋겠다.


#6.

 <단어의 집>이라는 책을 읽었다. 3월부터 트레바리라는 소셜 플랫폼에서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 달 책이 안희연 시인의 <단어의 집>이었다. 탕종, 버력, 잔나비걸상, 출몰성 등 평소에 우리들에게서 소외된 단어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섬세함에 놀라면서 읽었다. 또 이를 풀어나가는 말솜씨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난잡할 수도 있는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지만, 재밌게 읽혔고 결국 의미 있는 단어를 건네주었다. 여러모로 배울 게 많았던 책이다.

안희연 - <단어의 집>

이 책을 읽고 나서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산문집을 주문했다. 이쪽 분야에선 꽤나 유명한 작품이라길래 일단 질러버렸다. 읽으려고 대기 중인 책이 산더미인데 무책임하게 또 대기줄만 늘여버렸다. 여튼, <단어의 집>은 내게 산문의 매력을 알려주었다. 꾸밈없는 상상력과 개성 있는 문체로 쓰인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일면식도 없는 작가와 친밀감이 생긴다고나 할까. 이렇게 잘 쓰인 에세이를 접하다 보면 나 또한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어진다. 대학생 시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금방 시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꾸준히 진행해서 스스로도 놀랐었다. 일이 바빠지면서 접었었는데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묻어 두었던 취미를 다시 끌어올려 준 이 책과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 본다!

 

2022년 6월은 정말 풍부했다. 하나하나가 글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벌써 2022년의 절반이 지나갔는데, 다가올 절반은 또 얼마나 풍부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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