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코비드. 하지만 다 살아진다.
우한에서 COVID-19이 기승을 부리며 점차 퍼져 중국 울타리를 넘어갈 때 즈음, 나는 런던에 왔다. 2월 초에 입사하고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미국으로 일주일 디자인캠프(디자인 오리엔테이션)를 다녀오니 3월이 되었다. 이미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COVID-19이 점차 공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한국에도 확진자가 갑자기 확 늘어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영국으로 돌아와 한 일주일남짓 출근했을까. 갑자기 점심을 먹고 있는데 런던 오피스 전체 공지가 떨어졌다. 런던 오피스에 방문했던 한 직원이 확진을 받았다는 내용과, 대청소와 소독을 위해 오후 2시까지는 모두 오피스를 비우고 집에 가라는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때만 해도 바이러스가 지금처럼 유럽에 급격하게 퍼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가 당황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다들 필요한 짐만 싸들고 서둘러 오피스를 빠져나왔다. 아마 한 동안은 집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며 모니터를 들고 집에 가는 팀원도 있었다. 오후 두 시. 집에 가기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에 몇몇은 함께 모여 일할 수 있는 카페로 함께 떠났고, 몇몇은 집으로 향했다.
그것이 이 기나긴 고립의 서막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 한 사람. 모니터까지 챙겨 집에 가던 그 친구 한 사람만 빼고. 난 새로 구한 집으로 아직 이사하지 못해 에어비앤비에 머물고 있었기에 오피스에서 이래저래 짐을 챙겨가기도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 화초. 바로 전날 배달받아서 고이 책상 위에 모신 내 식물 친구는 어떡하지. 일단 급히 일할 수 있는 것들만 챙겨서 다시 에어비앤비로 돌아왔다.
내가 머물던 에어비앤비에는 먹을 것이 전무했다. 딱히 먹을 것을 쟁여두고 요리를 해서 먹을 이유가 없었다. 워낙 회사에서 아침과 점심, 간식까지 풍성하게 챙겨주는 데다가 심지어 저녁도 싸갈 수 있게 준비해줬기 때문에 따로 뭔가를 먹을 일이 전혀 없었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간단히 배달시켜먹으면 그만이었다. 갑자기 슬픔이 몰려왔다. 왜 하필 지금인지.
주말이 지나고 대청소와 소독을 마친 오피스는 다시 열렸지만, 이내 곧 다시 닫혔다. '웬만하면 재택을 하세요'의 가이드라인이, '출근하지 마세요'로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결국 이사를 제때에 하지 못해 집이 없었던 나는, 회사에서 모니터를 들고 오는 것은 고사하고, 남의 집에서 편하게 일을 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이 재택 시국을 맞이했다. 게다가 회사에 입사한 지 고작 한 달 남짓이었다. 출장으로 미국에 일주일 머무르다 돌아왔기 때문에, 적응은 커녕 함께 일하게 될 팀 사람들과 전부 인사를 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오피스가 닫힌 후 2주, 여차저차 다행히 런던 락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이사를 마쳤다. 하지만 오피스의 문은 이미 굳게 닫힌 상태라 집에서도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홈 오피스를 셋업 하는데 필요한 모니터나 기타 장비를 가지고 나올 수는 없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메일로 문의를 했지만 곧 불가능하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럴수록 잡생각을 버리고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벌어진 일, 이것도 나중에 떠올리면 그저 안주거리 추억이 되겠지. 하지만 매일 방에서 거실로 나오는 극히 짧은 5초 커뮷을 하고, 팀원들을 컴퓨터 화면으로만 봐야 하는 것이 매우 슬펐다. 너무 답답했다. 이제 막 조인한 병아리 같은 난 모르는 것도 많고, 질문해야 하는 것들도 많은데 그걸 굳이 모두 영어로 타이핑을 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게다가 팀원 간에 신뢰를 쌓기는커녕 안면도 전부 트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더 그랬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고, 하다 못해 눈치라도 볼 수 있는 오피스에서도 파악이 힘들었는데, 그걸 전부 이 작은 모니터 안에서 다 해야 한다니.
내가 재택을 싫어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다 개인적인 이유다. 내 성향과 재택근무가 맞지 않는 까닭이다. 지난주 우리 회사도 대부분의 포지션을 WFH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 사실 적잖이 당황했다. 오피스 출근에 많은 무게와 의미를 두던 회사 문화가 있었기에 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가족도 버리고 런던까지 와서 굳이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며 만감이 교차했다.
사람이 그립다. 내게는 화면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랙션만으로는 상대방과의 관계 빌딩이 어렵다. 다들 제각기 다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있지 않나. 그것을 영어로 해야 하니 더더욱 그렇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간단히 질문해서 해결해도 되는 것들을 혼자 끙끙대며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모두가 너무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 뉴비가 삐약대는 걸로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쫄탱이라서 더 그런 건지. 가볍게 옆에 앉아 한 두 문장으로 물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굳이 미팅을 잡아야만 하는 것이 많은 팀들과 콜라보해야 하는 크나큰 규모의 회사의 특성상 나 같은 뉴비가 적응하는데 더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집에 갇혀 일하게 된 지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지난 두어 달 동안 그렇게나 끔찍이도 싫었던 재택근무는 내게 이제는 '그냥저냥 할 만 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왔다. 물론 그 시간들을 지나는 동안 팀원과의 미스커뮤니케이션도 종종 있었고, 여전히 무언가 사태 파악을 하려면 온 정신을 콜에 집중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다. 이사한 후 한 달 동안은 인터넷 설치 대기자가 너무 많아 모바일 테더링으로 간당간당 버티며 근무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버티기 만랩은 아니어도 웬만한 어려움은 이제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역시나 적응의 동물이었던 것이다! 별의별 일을 다 겪고 나니 그렇게나 싫었던 재택이 할 만 해졌다. 여전히 사람이 그립고, 팀원들이 보고 싶지만. 그럼에도 곧 내게 출근과 재택을 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출근을 선택할 거다. 할만해졌다는 거지 좋아졌다는 건 아니니까.
코비드의 저주가 금방 끝나지 않을 걸 알고 있었지만, 이제라도 금방 지나가 주기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고대했던 런던의 봄은 내가 갇혀있는 동안 떠나 사라졌고, 이윽고 여름이 기웃거리고 있다.
상상 속의 난, 날 좋은 날 햇살을 받으며 갤러리 투어를 하고, 공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새들을 구경한다. 그런 보통의 소소한 일상이 어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뭐 요즘은 그런 것들이 다 작은 화면 안에서 다 가능하다고는 하더라. 온라인 갤러리 투어, 온라인 산책 등등.. 사람들은 내가 그랬듯, 이 시국에도 잘 살아남을 돌파구를 부지런히 찾는 듯 보인다. 미래 생활의 프리뷰 같은 느낌이 진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몸소 느끼는 것과 같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하다.
내일도 내일의 해가 뜨겠지. 하루빨리 재택이 끝나는 날의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