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 군번 없는 군인
드디어 아버지의 고향 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노근리 평화공원과 사건 현장도 들러 봤다. 노근리 사건은 대전전투에서 퇴각하는 미군이 인민군과 전투를 치르면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인 듯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노근리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쯤에 고향에 도착했던 것 같다.
이 여행의 최종 구간인 황간에서 매곡까지는 함량 100% 도보여행이다.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햇볕이 뜨거웠던 날이기도 했다. 물을 2리터쯤 마신 것 같고, 1.8리터가 땀으로 나머지는 소변으로 배출된 듯하다.
아버지는 인공 치하에서 황간중학교 교사라는 신분을 얻었으나, 등교하는 학생도 없는 학교의 교무실만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교원연수에 참석하라고 해서 갔더니 2일 예정이던 교원연수가 돌연 취소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질 무렵 농가에 있던 인민군 부상병을 만나 국도까지 업어다 주게 되었고, 국도에서 인민군의 대규모 퇴각 행렬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 밤 자정 무렵에는 동네에서 활동하던 좌익 조직이 그동안 사용하던 경찰지서를 폭파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또 한 번의 진공상태 - 인민군은 철수하고 아직 국군이나 경찰은 진입하지 않은 - 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틀 후 9월 28일에는 드디어 동네에 미군 차량이 나타났는데..
미군부대의 선두가 내가 있는 정미소 앞에서 멈추었다. 병사들은 완전무장이었고 먼길을 왔는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첫 번째 지프차에 탄 장교가 뒤에 따라온 차를 향하여 소리 지르니, 동양인 용모의 미군 병사가 뛰어내려 “당신들은 여기 사람?”라고 했다. 억양은 영어지만 분명히 우리말이었다. 동리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대학생이니 영어를 알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예, 이 동리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미군 병사의 우리말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마도 하와이 한국계 미국인의 3세쯤 되는 모양이어서 극히 한정된 어휘밖에 몰랐다. 나는 인민군의 소재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에 인민군은 없고 2일 전에 낙동강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이 상촌을 지나갔으며, 많은 패잔병들이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입니다.”라고 말해 주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영어로 “We did not see North Korean Army. But they said North Korean Army retreated from Nakdong River Line to north through Sangchon over there. And they say that many north Korean hide into the mountains.”라고 말하니, 그 장교는 “Oh! You speak English! Good! Over here! Show me where we are now.”라고 했다.
그는 지프차에 탄 채 한 장의 지도를 펼쳤다. 영어로 기록된 우리나라 지도이다.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 경부선 철도를 더듬어 황간을 찾고 매곡면과 노천리를 찾아 짚어 보였다. 매곡면 노천리가 나와있는 그렇게 세밀한 지도는 처음 봤다. 미군이 우리나라의 세밀 지도를 가지고 작전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미군 장교는 내가 영어를 하는 것과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여 준 것이 놀랍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느냐고 물었고 나는 대학생이고 학교에서 배웠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난생처음으로 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해 본 것이었다. 그래도 그날의 대화는 순조로왔다. 미군 장교는 나를 지프차에 타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래도 나를 태우고 상촌으로 올라가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No, my parents live here and I should take care them. No thanks.”라고 했더니, 그 장교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상촌으로 지프차를 몰았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미군은 인민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매곡국민학교에 부대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패잔병 소탕을 위해서 미군은 민간인을 또 다시 소개하여 가족들은 아버지의 외가 가 았는 안골 마을로 피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급하게 피난하느라 챙겨 오지 못한 가재도구를 챙기러 집에 가다가, 앞집 숙부댁 뒤꼍에서 똥을 누고 있는 미군 병사를 발견하고 제지할 생각으로 "Excuse me."로 말을 걸었다가, 그 미군 병사의 안내로 매곡국민학교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상사와 면담을 하게 되는데..
Sergent Cab은 나를 내려다 보고 좀 관찰하듯 하였다. 나도 그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키는 6척이 넘고 마른 편이고, 얼굴과 팔다리가 길고 안경을 썼으며, 나이는 40을 넘은 것 같았다. 말소리는 나지막하고 발음은 분명하고 미국 남부 발음은 아니나 코가 막힌 사람의 말소리 같았다. 평이한 영어를 썼으며 나하고의 대화에서 그는 Slang을 쓰는 일은 없었다.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 몇 살이냐 등 간단한 얘기를 주고받던 끝에 Sergent Cab은 나에게 물었다.
“We are moving up now. Will you come with us?”
나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이동하는 모양이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것 같은데 어디를 가는데 같이 가자는 것인가? 나는 그래서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I don’t know, maybe front line. I don’t know where we are going, however it is sure we are moving to north.”
어안이 벙벙하였다. 무어라고 대답을 하여야 좋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주저하고 있으니까 Sergent Cab은 말했다.
“We are fighting against North Korean Reds for you and your people, however we do not understand Korean Language. There are lots of KATUSAs in our company but they do not understand English. We need interpreters. Please join us and help us. This war is yours, not ours.”
나는 또 물어보았다.
“Are you going to hire me?”
“No. We can’t hire you because we cannot pay you. You should voluntarily join us. I suppose this war would be over in a month or two, you may come back your home soon.”
이때 미군 병사들과 미군에 배치되어 있는 카투사들이 짐을 싸고 경기관총, 중기관총, 박격포 등을 차량에 싣고 이동 준비를 시작했다. 학교 밖에 포진하고 있던 부대도 운동장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O.K. I will join you, but my family stay in next village, so I am going to tell to my parents that I am leaving with you. Give me one hour time. I will be back within an hour.”
그는 말했다.
“No, We have no time. We are leaving in a minitue. You should make your mind now!”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마침 운동장에 있는 동리 사람에게 '이 미군들이 이동을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니 갔다 올 예정이라고 우리 아버님께 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미군들 말에 의하면 전쟁도 한 두 달 내로 끝날 것이고 전투도 없을 것 같고 멀리 이동하지도 않을 것 같으니 아마 곧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전하여 달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는 참전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부모님께 다녀온다는 인사도 못한 채 미군 상사를 따라 통역으로 참전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군복만 줘서 맨손으로 전장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방부와는 관련이 없는 절차로 입대했기 때문에 당연히 군번도 없었고, 찬바람 불기 전에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