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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병우 Feb 06. 2019

10. 비상 상황에 대한 대비

월드노마드 보험, 그리고..

한국어 사전에 ‘비상 상황’이란 ‘뜻밖의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등산 경험이 거의 없다. 최근에 북한산 백운대를 다녀온 것과 북한산 둘레길을 한 바퀴 둘러본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발생하는 상황의 대부분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뜻밖의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비상 상황을 최소화해야 안전하게 트레킹을 마치고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실험에 의하면 학생들의 자유투 성공률을 측정한 후에, 2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매일 1시간씩 농구코트에서 실제로 슈팅 연습을 시키고, 다른 팀은 같은 시간에 농구코트에서 슈팅 연습하는 상상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2팀의 자유투 성공률을 측정했을 때 유의할 만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실제 하는 것과 상상하는 것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나 보다.


현재로서는 부족한 경험을 보완할 유일한 방법이 상상 훈련이다. 상황의 긴급성과 위급성은 외부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므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뜻밖의’라고 하는 부분뿐이다. 뜻밖의 상황이 되지 않도록 상상력을 발휘해서 발생 가능한 상황을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트레킹 중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을 때는 배낭 아래 포켓에 들어있는 방수 재킷과 방수 덧바지를 꺼내서 입고, 배낭 가운데 외부 포켓에 들어있는 일회용 우비를 꺼내서 입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롯지까지 가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린다. 트레킹 중에 눈이 쌓여 미끄러운 구간을 만났을 때는 배낭 가운데 포켓에 들어있는 아이젠을 꺼내서 착용하고, 필요시에는 스패츠도 착용한다.


북한산 연습 산행 때는 미끄러운 구간이 없어서 아이젠이 새 것이다. 아쉬운 대로 현관에 가서 등산화 위에 아이젠 끼우는 연습을 해 봤다. 그런데 뜻밖에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등산화를 신은 채 아이젠을 끼우려니 일단 바닥에 퍼질러 앉아야 했다. 눈이 쌓인 길가에서 바닥에 퍼질러 앉으면 엉덩이가 젖을 것 같다. 등산 방석도 챙겨야겠다. 아이젠을 처음 끼워보다 보니 어느 쪽이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구별도 쉽지 않다. 간신히 아이젠을 끼우고 스패츠를 착용해 보려니까 순서가 바뀌었나 보다. 아이젠보다 스패츠를 먼저 착용해야 하는 모양이다. 유튜브 영상을 먼저 찾아볼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뜻밖의 상황이다 싶었다. 아무튼 수많은 비상 상황 중에 하나는 지웠다.


Deurali에서 MBC에 이르는 길은 양쪽이 가파른 산 사이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산사태 또는 눈사태 위험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26 ABC 인근에 눈이 갑자기 많이 와서 가슴 높이까지 쌓이고, 한 때는 ABC에 접근하는 등산로가 폐쇄되기도 했는데, 2/6 또다시 누적 적설량 1m에 육박하는 큰 눈이 예보되어 있다. 고도 3000m 이상의 지역은 계속 영하의 날씨이기 때문에 눈이 녹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트레킹 할 2/10 이후에는 눈사태의 위험이 상당히 높을 것 같다.


만약 눈사태로 휩쓸려 골절 상을 입고 어딘가에 고립된다면? 배낭에 매달아 놓은 휘슬을 불고, 헤드랜턴을 사용해서 구조될 수 있도록 계속 조난 신호를 보낸다.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면 배낭 안에서 은박지로 된 비상 담요를 꺼내서 두르고 핫팩을 터뜨려서 저체온증을 막아가며 최대한 버틴다.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조되지 못한다면?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한 고소 증세로 뇌부종 또는 폐부종이 발생해서 한시바삐 낮은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면? 등산로 주변 몇몇 곳에는 구조용 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동행한 가이드를 통해서 구조용 헬기를 불러서 긴급하게 후송해야 할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얼마 전 그랜드캐년을 관광하던 한국 학생이 절벽에서 추락하여 응급치료를 받고 있는데 치료비와 본국 송환에 드는 10억여 원의 비용 때문에 송환을 못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보험을 들어놓는 것이 안전할 듯하다. 나는 보통 해외여행을 떠날 때는 공항에서나 인터넷으로 해외여행자 보험을 든다. 이번 여행의 전 기간을 에이스손해보험의 Chubb 해외여행보험에서 견적을 받아 보니 5만 7천 원 정도가 나왔다. 이 보험에서는 다치거나 해서 현지에서 치료를 받는다면 본인이 먼저 사용하고 나중에 청구할 수 있다. 죽거나 다쳐서 한국으로 송환해야 하는 경우의 비용도 보장해 주지만, 고산병으로 인해 구조용 응급 헬기를 부르는 비용은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국내 보험사의 일반 해외여행보험이 다 그렇다.


네히트에서 보면 몇몇 사람이 응급 운송 비용을 50만 불까지 보장하는 월드노마드 보험을 가입하고 간다는 얘기 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응급 운송 비용 보장 서비스를 포함해서 $97 수준의 견적이 나왔다. ABC 트레킹은 그동안 했던 보통의 해외여행에 비하면 높은 수준의 확률로 사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입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비용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해발 3000m 이상에 체류하게 되는 2/11부터 2/16까지의 5일 간만 가입하는 경우 $36 수준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보험이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쓰는 돈이어서 오히려 보험혜택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인천 출발부터 다시 귀국할 때까지 전 기간에 대해 월드노마드에서 표준 보험을 들었다. 네히트에 어떤 사람은 트레킹을 시작할 때 계약한 여행사에 보험증과 보험회사 연락처를 주고 응급 헬기를 불러야 하는 만약의 사태에 이용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헬기 회사에 확실하게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신속하게 출동하기 때문이란다.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끝으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유서를 준비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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