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도할 뻔했다.
2/10 트레킹을 시작하는 날이다. 간밤에 먹기 시작한 아세타졸아마이드 때문인지 밤새 화장실을 3번은 간 것 같다. 알람 소리에 아침 6시 반에 잠에서 깨어 짐 정리를 다시 했다. 이번에는 생존에 필요한가? 대체품도 없는가?를 기준으로 정리했다. 그래도 내 짐은 8kg 가이드 짐 13kg 수준이다. 더는 못 줄이겠다.
booking.com에서 예약한 조식 포함 2만 원짜리 호텔의 아침식사는 간단했다. 토스트, 삶은 감자, 삶은 계란, 사과 바나나 샐러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니, 약속시간 10분 전에 (주)포카라 라주와 가이드겸포터 모한이 왔다. 예약 내용을 확인하고, 모한과 방에 와서 짐을 가지고 내려가려다가 모한에게 가이드 라이선스 확인 요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지금은 없고, 자기는 가이드 테스트에 합격했는데, 2/18부터 트레이닝을 받고 나면 나온단다. 반쪽짜리지만 일단 가이드로 인정하기로 했다.
방을 나서기 전에 고글을 찾으니 안 보인다. 고글을 찾느라 쌌던 짐을 전부 풀고 난리를 쳤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배낭 위쪽 주머니에서 고글이 나왔다. 평소 보관하던 곳이 아니라서 착각했다. 노화현상 중의 하나다.
호텔에서 지프로 출발해서 Sarangkot을 통과해 Kande로 가더니 그곳에서 다른 지프로 교체했다. 나야풀에 도착해서 TIMS와 permit을 확인받은 후 지프로 계속 이동했다. 차멀미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 때쯤 Matkyu(Siwai Jeep Counter)에 도착했다. 일단 스파게티로 배를 채우고, 홍차를 한잔 했다.
오후 1시, 드디어 대망의 트레킹 출발!
출발 5분 만에 몸속 엔진이 과열되나 보다. 땀이 많이 나기 시작한다. 30분 만에 만난 오르막길에서는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40분 경과 후 만난 깔딱 고개 정상에서 쉬려고 앉았는데, 심한 어지럼증이 발생했다. 기립성 빈혈처럼 일어나려는데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게 된다. 모한에게 고산병 걸린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단다. 그러면 내가 판단하는 수밖에 없겠네.. 10분 정도 쉬면서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조심조심 한걸음 한걸음 출발하기 시작했다.
다시 걷기 시작하니 어지럼증은 서서히 사라졌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온동으로 온몸의 피가 근육으로 재배치되면서 일시적으로 빈혈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정도 걸었더니 이번에는 속이 불편해지면서 똥이 마려워지기 시작한다. 대학 동창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갈 때 자기는 갑자기 똥이 마렵더라는 얘기를 했던 생각이 났다. 가까이 화장실 있냐고 물으니 근처에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길 옆에 숨어서 자연의 부름을 받았다. 오줌을 싸서 영역을 표시하는 사자처럼 히말라야에 내 영역 표시를 찐하게 했다. 속이 시원해지면서 컨디션이 나아졌다.
강 위에 걸린 길이 287m짜리 출렁다리를 건너니 지금부터 Chhomrong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 계단이라고 한다.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 계단이다. 다리에 쥐도 나고 너무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 선언을 해도 갈 데가 없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유튜브에서 배운 타이거 스텝을 밟으며, ‘이건 계단 오르기 타이거 스텝 연습이다.’를 외웠다. 나중에는 모든 스텝이 한 호흡에 한 걸음씩 걷는 레스트 스텝이 되었다. 2초에 한 걸음씩 걷는 속도다.
모한이 내 뒤에서 나를 따라오니까 마치 내 등을 떠미는 듯한 압박감이 든다. 그래서 모한에게 앞서 가라고 했다. 앞에 가는 모한은 가다가 앉아서 쉬다가 내가 오면 일어나서 간다. 그게 오히려 나한테는 편했다. 2초에 한 계단씩..
Chhomromg 가는 오르막 계단에서 아이젠을 낀 채 내려오는 청년을 발견하고 위에 길이 미끄럽냐고 영어로 물었다. 대답하는 억양이 영락없는 한국식이다. 편한 우리말로 다시 물었다. Dovan에서 출발해서 내려오는데 벗기 귀찮아서 그냥 온단다. Dovan 위로는 눈 때문에 더 못 올라가고 이미 올라간 사람들은 헬기 타고 내려온다고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한다. 아까 지누단다 지나는 길에 연신 헬기 소리가 들리더니 ABC에서 사람들 실어내리는 소리였나 보다.
모한에게 Chhomrong에서 롯지는 어디가 좋으냐고 물으니 액설런트 뷰 롯지가 좋다고 해서 거기로 가기로 했다. 그곳이 뷰가 좋다고 네히트에서도 봤다.
오후 5시 반이 돼서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롯지에 도착했다. 각본대로 일단 빨랫줄을 치고, 젖은 속옷을 다 벗어서 널고 뽀송한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공용 화장실에는 찬물만 나와서 고양이 세수만 했다. 저녁식사로 피자를 시켜 먹고 식당의 난로가에 앉아 인터넷을 했다. WiFi값을 200루피 별도로 받는다.
모한이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20년 만의 폭설로 Chhomrong부터 등산로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일단 내일 아침에 아침을 먹고 체크포인트에 가서 상황 파악을 한 후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Excellent View Lodge에서 구름이 잠시 걷힌 틈에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 마차푸차레는 잠깐 얼굴을 보여줬다. 너무너무 힘든 하루였다. 이렇게 트레킹 첫날은 저물어갔다. 9시 취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