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글에서 나는 AI와 함께 일하며 느꼈던 지적 희열, 키보드로부터 해방되어 생각의 속도로 결과물을 창조해 내는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심풀이 삼아 별 기대 없이 20년을 묻어두었던 과제를 꺼낸 것이었는데, AI와의 협업을 통해 불과 보름 만에 결과에 접근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그것은 분명 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거대한 징조였다.
하지만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 화려한 구호와 깃발 뒤에는 혼란과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오늘 나는 그 혁명의 불길 속에서 잠시 길을 잃었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수업료를 내고 새로운 길을 찾아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첫 번째 그림자: 속도의 노예가 되다
AI와의 협업은 나를 새로운 차원의 생산성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내 목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기도 했다. 내가 어떤 지시를 내리면 AI는 엔터키를 두드림과 동시에 결과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다음 단계로는 1안), 2안), 3안)이 있는데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묻는다. 인간들과 일해 온 관성을 가지고 있던 나는 '내가 일을 안 시키면 이 것들이 놀겠지? 월급 주는 사람으로서 노는 꼴은 못 보지.'라는 생각에 열심히 답변을 검토하여 다음 지시를 내렸다. (엔터) (띵) "다음은 이것을 할까요?" "그래" (엔터) (띵) "다했는데 다음에는 뭘 할까요?" 이런 대화가 계속되면서 어느새 나는 AI의 속도에 종속되고 말았다. 심지어 내가 AI에게 일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인지, AI가 나에게 자기 결과를 검토해 달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과거에 존재했던 '생각의 틈'과 '사색의 공백'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AI의 결과물을 받자마자 다음 일을 해야 했고, 또 그다음 일을 해야 했다. 결국 화장실을 뛰어갔다 오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됐다. AI를 상대하느라 새벽 3시 4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잠도 깊이 잘 수 없었고, 아침 6시면 눈이 번쩍 떠져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것은 ‘생산성의 역설’이었다. 도구의 효율이 극대화되자,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 오히려 시스템의 병목(bottleneck)이 되어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역설 말이다. 생산성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나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지난 15년간 충전했던 내 배터리가 소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두 번째 그림자: 최적화를 향한 열병
두 번째 부작용은 '여기 상태(Excited State)', 즉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비롯됐다. AI의 엄청난 잠재력에 전율을 느끼면서, 나는 잠시의 기다림이나 아주 작은 불편함도 허락할 수 없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AI와의 협업 대화가 길어지자 AI가 답변을 내놓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기존 노트북도 최고 성능이었지만, 초기와 같은 빠른 응답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오판하고 또다시 최신형 노트북을 질렀다.
AI와 대화하며 일하다가 이어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대화가 중단됐다. 끊김 없이 일하기 위해서 인이어 노캔 이어폰을 하나 더 질렀다. 인이어 이어폰을 하루 종일 끼고 있었더니 귓구멍이 아파왔다. 그래서 골전도 이어폰을 또 질렀다. 이건 또 PC와 휴대폰 연결 전환이 번거로웠다. 그래서 결국 멀티포인트 연결을 지원하는 세 번째 이어폰을 지르고 나서야 이 여정이 끝났다. 1주일 사이에 3개째다.
ChatGPT Plus의 고급 음성이 한도에 도달하자, 월 200달러짜리 Pro 플랜을 질렀다. Gemini가 토큰이 다 됐다며 일을 안 하겠다고 버티자, 그것도 참지 못하고 월 200달러를 내는 Gemini Ultra를 질렀다.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 퍼포먼스를 내는 나는, 그 정도 금액은 쓸 자격이 있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폭주 기관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보인 것들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게 만드는 AI에 밀려가다가 내가 번아웃되어 병원 신세를 진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소모적인 경주를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가야 할 진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 나는 AI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다. 이 대원칙을 깨닫고 의도적으로 ‘틈’과 ‘공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정 전에는 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강아지의 배변 리듬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아침 8시와 저녁 9시에는 반드시 공원을 산책한다. 이 '멈춤'의 시간이 나에게 통찰을 주고, 나를 다시 지휘자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둘째, 퍼스트 펭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다. 내가 1주일 만에 3개의 이어폰을 사고, 수십만 원의 구독료를 망설임 없이 질렀던 조급함의 본질은 '최고, 최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하지만 Lotus 123가 열어놓은 스프레드시트 시장을 결국 Microsoft Excel이 먹어치우는 것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을 가장 먼저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진정한 지적 대전환을 위하여
분명 지식혁명의 증기기관인 AI는 그저 편리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일하는 방식, 시간의 가치, 협업의 정의를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는 ‘지적 대전환’이다.
하지만 이 대전환의 핵심은 AI의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AI에 앞서 ‘인간인 나’를 이해하는 데 있다. AI의 무한한 속도 앞에서 나의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쏟아지는 신기술의 홍수 속에서 조급함을 버리고 어떻게 나만의 전략을 세울 것인가.
나의 이 값비싼 수업료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AI의 주인이 되어, 우리 자신과 조직의 성장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로 이 혁명을 완수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