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D-Day

가회동 이씨 댁 안방 남자

by 류병우

집사람은 내가 무엇을 하든 여간해서 별 말이 없다. 무슨 일이든 잔소리하는 법이 없으니 편하고 좋기는 한데,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조금 서운할 때도 있다. 오늘도 그저 조심하라는 말뿐.. 집사람의 전송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7월 10일 경 마포전차종점(현 불교방송국 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지금의 마포대교 근처에 놓여있던 가교를 건너서 남하를 시작했다고 했다. 나도 일단 마포대교 북단 마포전차종점부터 걷기로 했다.


한강 전투에 끌려갔다 온 충격에서 겨우 벗어 날 때 쯤..



아마 7월 초하루쯤이었던 것 같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3살 정도 된 어린아이가 딸린 낯선 부부가 이씨 댁 안방에 와 있었다. 중동 5년생인 이군은 이씨 댁의 친척이라고 했으나 나를 인사시키지는 않았다. 남자는 작은 키에 나와 의식적으로 접촉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남자의 신분에 호기심은 있었으나, 그쪽에서 먼저 접근하지 않는 한 내가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군도 별로 상세한 것을 말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짐작으로 정부의 관리였거나 경찰 또는 군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입성한 인민군들은 패잔병 소탕 차원에서 국군을 수색하고, 토박이 좌익조직은 복수 차원에서 수색을 하고 있던 중이라 안방 남자는 극도로 노출을 꺼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침이면 검은 하의에 흰 노타이셔츠를 걸치고 보리짚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와 저녁밥을 먹었으나 같이 합석하여 식사하는 일은 없었다.


2~3일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시간이었다. 나는 이군과 같이 건넌방에 있었고, 그 안방 남자의 안사람은 아이와 함께 안방에 있었던 것 같고, 아랫채 월남한 모자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갑자기 대문을 구둣발로 차는 소리가 나더니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와 갑작스러운 총성과 동시에 벽력 같은 소리로 '모두 손들고 나오라'고 소리쳤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혼비백산했다.


안마당을 쳐다보니 내무서원으로 보이는 군복 비슷한 제복에 푸른 완장과 푸른 띠를 두르고 둥근 모자를 쓴 사람이 권총으로 안방과 건넌방 우리 쪽을 번갈아 겨누고 있고, 평상복 차림으로 허리띠에 붉은 헝겊을 꽂은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몽둥이인지 죽창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을 들고 그 뒤에 늘어서 있다.


나는 '안방 남자를 잡으러 왔구나.'하고 직감했다.


"나갑니다. 쏘지 마시오!"


라고 소리치며 이군과 함께 두 손을 높이 들고 마루로 나갔다. 총구가 내 가슴을 겨눈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 얼어붙었다. 내무서원은 뒤에 있는 자에게 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더니 이번에는 총구를 안방 쪽으로 겨누면서 소리쳤다.


"개쌔끼 손들고 나오라! 나오지 않으면 쏜다."


안방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내가 대신 소리쳤다.


"아주머니 애기 업고 나오시오."


안방 남자의 안사람이 애기를 업고 마루로 나왔다. 그 부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얼이 빠져 서 있었다. 내무서원이 눈짓을 하니 청년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도 안방 남자를 찾아내지 못하자, 여성 동무의 남편이 남조선 경찰이지, 남편은 어디 갔느냐며 족쳐대기 시작했다. 부인은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아무 말도 못 하였다. 안방 남자를 찾지 못하자 내무서원은 사람들을 심문하기 시작했고, 나에게는 매서운 눈초리로 반동분자가 집에 있는 데도 고발하지 않았으니 내가 의심스럽다고 윽박질렀다.


그리고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고는 가회동 파출소로 데려갔다. 나는 서울공대 4학년생으로 6월에 이 댁에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와 주인집 사정도 전혀 모르며, 그 부인은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있더라고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들이 해방 후(그들은 서울입성을 서울해방이라고 하였다) 학교에 나갔었느냐고 물어서 6월 28일에는 한강 변에 가서 포대 구축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더니, 관심을 보이며 나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 이들도 전선의 상황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한강전투 이야기를 하고 나니 내무서원과 함께 왔던 젊은이 중에 리더 격이라고 생각되는 자가 이군댁에 와 있던 안방 남자는 악질 반동 경찰간부이며, 효자동에 살고 있었는데 자취를 감추어서 추적해 보니 그 집에 있는 것을 알고 급습하였으나 이미 달아난 모양이라고 했다.


내무서원은 내 이름과 소속 대학명을 적어 놓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동무는 하루에 한 번씩 내무서에 출두하여 악질 반동의 동태와 그 가족의 움직임을 보고하시오. 그렇다고 동무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니 적극적으로 대학의 모임에 나가시오."


이씨 댁에 돌아와 이군의 얘기를 들어 보니, 안방 남자는 경위 계급의 경찰학교 교관인데 여기 오기 전에 효자동 셋방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께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군에게 자세한 것을 내가 몰랐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하고, 내무서원이 나에게 매일 동태를 보고하라고 했으니 나에게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다행히 안방 남자는 아버지가 또 다른 일로 가회동 이씨 댁을 나와 북아현동 희원이 아저씨댁으로 옮길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첫날의 목적지 안양역에 계획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다. 내일은 비 예보도 있어 더욱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