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D-1

1950년 6월 28일 - 한강 전투

by 류병우

사진은 왼쪽부터 신흥균, 한소룡 그리고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6월 28일 아침에 전날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친구 신흥균을 찾아 이화동 신흥균의 삼촌댁에 갔다가 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동숭동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 이 세 사람이 조우한다.



흥균이와 함께 학교로 갔다. 학교 뒤쪽 낙산 밑에 살던 한소룡이도 나왔다. 누구에게 뭘 물어보려고 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교수들이나 강사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가 김일성대학 학생이 강의를 한다고 합동강의실에 들어가라고 외쳐서 모두들 교실로 들어갔다. 150명 정도 수강할 수 있는 교실이 학생들로 거의 들어찼다.


한 학생이 단상에 올라갔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이다. 경기중학을 나오고 성대 예과를 거쳐 학부는 공대 전기공학과로 진입한 사람이다. 나는 그가 공산당원인지 전혀 몰랐다. 단상에 올라간 그는 함경도 억양으로 무엇인가 열변을 토했다. 무슨 이야기 끝에 북에서 내려온 누군가를 소개한다고 했다.


누군가 박수를 선도하여 박수가 여기저기서 나왔으나 좀 어색한 박수였던 것 같다. 정체 모를 한 사람이 단상에 올라갔다.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나이를 먹은 듯했고, 감색에 가까운 춘추복에 넥타이 차림이라 노동자 농민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앉은 곳은 교탁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평양사투리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흥균이, 소룡이와 밖으로 나가볼까 하고 뒷문 쪽에 눈길을 주니 유난히 빛나는 낯선 얼굴들이 문을 막고 있었다. 2~3명이 나가려 하자 제지당하고 자리에 되돌아 온다. 무엇인가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는 동안 교탁 가까운데 사람들이 무슨 구호를 외치며 대열을 지어 앞문으로 교실을 나간다. 그럭저럭 대열을 따라나서니 흥균이는 보이지 않고, 소룡이만 옆에 있다. 나와 소룡이는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대열 속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종로를 지나 남대문을 거쳐 용산역 근처에 도달하니 해가 넘어가고 어두워졌다. 나도 소룡이도 불안했다. 주변에 아는 얼굴이 없고 처음 학교에서 대열의 선두에 있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용산역 근처에서는 소룡이도 슬금슬금 빠져나가 어둠 속에 사라졌다.


용산역을 지나 한강철교 근처 인민군 진지 한가운데까지 왔는지 인민군들이 보인다. 한강 너머로 야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이 상황을 설명한다.


"우리는 용맹한 조선인민군이 남조선 해방을 위해 싸우는 제1선에 도움을 주러 왔다."


한참만에 인민군 군관이 장총을 맨 전사 2명을 데리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인솔자가 다가가서 악수하고 짧은 대화가 오고 가더니 군관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인민군은 연설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인민군대는 서울을 해방시켰습니다. 이제 한 줌도 되지 않는 남조선 국방군을 소탕하면 조국은 완전히 해방되고 통일됩니다...' 그의 억양은 함경도 사투리였으나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달변이었다.


인민군 군관은 자기들이 남침했다는 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연설 말미에 우리가 할 일은 대포 주변에 방탄벽을 구축하기 위해 가마니에 흙을 채워 대포 옆으로 운반하는 일이라고 했다. 또 이곳은 최일선이기 때문에 야간에 작업 중에 이탈하면 수하 없이 발포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일장 연설이 끝나자 소금을 넣어 뭉친 주먹밥과 단무지 몇 조각이 배급되었다.


내가 어떠한 처지인가 상황을 판단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전쟁터에 노무대로 끌려온 것이었다.


....(중략)....


흙 가마니를 메고 작업장과 포대 사이를 수차례 왕복하였던 것 같다. 일장연설을 했던 군관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듯 서전의 전투 승리에 도취되어 연설에 가까운 정치 이야기를 떠들어댔지만 그 용어들은 나의 귀에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는 노력 동원된 학생들이 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밤 사이 포 사격 외에 전쟁터 같은 분위기의 긴박감은 없었다. 그렇게 1950년 6월 29일의 새벽 먼동이 텄다.


어스름 날이 밝아 올 무렾 용산역 방향에서 기관차 한대가 칙칙폭폭 연기와 스팀을 내뿜으면서 한강철교 쪽으로 오더니 우리가 있는 야포 진지 근처에 와서 멈추어 섰다. 멈추어 있었으나 기관차의 연도에서는 연기가 오르고 있으니 멀리서도 기관차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게서 가까운 곳에 삽이 몇 자루 팽개쳐져 있었다. 그것을 하나 주어서 들고 가면 가는 도중에 인민군이나 빨갱이 조직원들에게 수하를 당하더라도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라는 변명거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삽을 하나 집어 들고 슬금슬금 걷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탕탕탕하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황급히 몸을 숨기고 살펴보니 한강 건너편에서 연속하여 총탄이 날아와 기관차를 맞춘다. 기관차가 목표라면 대포알이 날아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몸을 낮추고 용산역 쪽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변명 거리로 삼으려던 삽이 없다.


되돌아 가서 삽을 가지고 올 것인가 이대로 가회동으로 돌아갈 것인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방금 빠져나온 전쟁터로 되돌아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대로 가회동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까지는 아직 좌익세력이 조직화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시골집까지 220km를 걸어가 보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었다. 오늘 점심 때는 대학동기인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송락경교수가 전화까지 해서 혹시 일부 구간이라도 함께 걷고 싶은 친구가 있을 지 모르니까 일정을 공개하란다. '헐~ 이러면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데.' 가다가 힘들다고 슬그머니 접기가 좀 어려워지네..


어쨌든 일단 내일 출발한다. 가능하면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일찍 출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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