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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Mar 30. 2016

음악은 얼굴을 바꾼다

음악 에세이 13 - 얼굴은 얼이 깃드는 곳이다.


우리는 바라보는 대상을 닮는다고 한다. 슬픔의 노래, 애가를 오랜 시간 공부한 분을 알고 있다. 슬픔을 깊이 응시한 그분의 눈에는 늘 슬픔이 어려 있었다. 속을 헤아리기에는 아직 어렸던 나는 그분께 여쭤보았다. “슬픈 일이 많아서 애가에 끌리신 거예요, 아니면 애가를 많이 듣다보니 눈이 슬퍼보이게 된 거예요?” 당황하는 그분께 답은 듣지 못했다. 슬픔을 담은 음악을 오래 들으면 슬픔이 눈에 배게 되는 것인가.


그 후 언젠가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만을 일주일정도 들은 적이 있었다. 즐거운 음악 감상 시간은 아니었다. 처절한 고독 속에서 치열하게 새겨진 정신의 얼굴을 계속해서 마주보는 것은 사실 고통에 가까웠다. 독방에서 그와 대면하다가 일주일 만에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거울에서 얼핏 환한 빛을 보았다. 해방의 기쁨 때문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날 일주일 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너 오늘 얼굴이 이상하게 빛나!” 나는 그동안 베토벤을 오래 바라보았을 뿐이다. 고통이 승화된 숭고한 음악을 바라보면 그 빛이 내 얼굴에까지 어리게 되는 것인가. 오래전 질문이 다시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음악회를 다녀오면 얼굴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느꼈다. 특별히 내게 강한 감동을 준 연주회일수록 그랬다. 내면이 변해서, 내 마음의 눈이 달라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실제로 얼굴이 변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한 연주회에 다녀왔다. 그야말로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한 자루의 도끼’ 같은 연주회였다. 마음이 벅차게 출렁였다. 끝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뜨거운 마음과 연이어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막을 길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연주회장에서 집까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왔다는 것을 집 앞에서야 깨달았다. 감동이 조금이라도 빠져나갈까봐 조심스러웠다.


방에 들어와 거울을 봤다. 틀림없이 얼굴이 달라졌다. 이전에 내가 보지 못했던 얼굴이 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내 안팎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내 외형의 확연한 변화에 충격을 받았다. 내면에 새로운 파문이 일렁였다. 음악을 들었다고 얼굴이 달라지다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면 충격이든 착각이든 어쨌든 깨어나겠지.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봤다.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달랐다. 아니 사실 예전보다 더 나아진 얼굴이었고 한결 마음에 들었다. 맑고 밝았다. 그래도 하루 밤 새에 변한 나의 얼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날 아침에 드디어 한 사람을 만났다. “얼굴이 왜 이렇게 달라졌어?” 나를 본 그분의 첫 마디였다. 뭔가 대답을 해야 했는데 뭐라 할지 몰라 “어제 좋은 연주 들어서 그래요”라고 했더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이없다는 듯 되물으신다. 나는 어물거리다 “좋은 연주를 들으면 얼굴이 변해요”라고 말했다. 나를 다시 바라보고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가시는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현듯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쥔 듯 했다. 엉겁결에 말한 그 말이 어쩌면 답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얼굴을 바꾼다.  


최근에 베토벤에 관한 책을 보면서 이 신비한 현상에 대한 확증을 얻게 되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베토벤은 160센티미터 정도의 단신에 기이하게 큰 머리, 단정치 못한 차림새로, 한 마디로 볼품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위대한 정신과 대면하는 순간 에 일어나는 외형의 변화에 대해 안톤 쉰들러는 이렇게 묘사했다.      


“베토벤은 어딘가 야만인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마는 높고 넓었으며, 갈색 눈은 작고 웃으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눈은 어느 순간 갑자기 아주 이상하게 커지고 부릅뜬 모습이 되고, 눈알을 굴리다가 번쩍거리며 빛을 발하기도 한다. 눈동자는 거의 언제나 위로 치켜뜨고 있거나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 어떤 구상이나 생각에 사로잡힐 때는 앞쪽 한곳을 골똘하게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그의 외모는 갑자기 눈에 띌 정도로 변하며, 아주 눈에 띄게 영감에 고취되어 위압적인 표정이 되기 때문에 그의 작은 신체가 그의 정신만큼 거대하게 우리 앞에 군림하게 된다.”


내면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은 숨길 수가 없다. 정신이 변하면 육체가 변한다. 베토벤처럼 격렬하게 변하지는 않더라도 알게 모르게 우리 역시 내면의 형상이 외형에 표현된다. 특정한 표현을 반복하면 그것이 우리의 독특한 표정이 된다. 어떤 표정을 많이 짓는가에 따라서 발달하는 얼굴 근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깊게 새겨진 표정이 곧 우리의 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표정에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감정을 “영혼이나 의지가 생생하게 되어 타인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행사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감정이란 단순히 표면적인 기분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음 안에 응축된 감정과 정신을 우리에게 이입해 우리를 승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물이다.




얼굴의 어원은 얼의 꼴이다. 즉 정신의 형상이 얼굴인 것이다. 얼이 머무는 곳, 얼이 깃드는 곳이 바로 얼굴이다.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고 성형으로도 바꿀 수 없다. 짙은 눈화장이 깊은 눈매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커진 눈이 더 넓은 시야를 주는 것이 아니므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감정이 느끼고 어떠한 마음을 품는가에 따라 우리의 얼굴은 변한다. 그것은 서서히, 수시로, 그리고 시시각각 변한다.


거울을 본다. 혼에 새겨진 음악의 형상을 희미하게 느낀다. 흔적이 아직 깊지 않다. 무릇 가꿀 만한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얼굴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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