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가득 머금고 있는 시적 음악
그림책 ‘에밀리’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시가 무엇인지 묻는 아이의 물음에 아빠는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가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려무나. 엄마는 한 작품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이 숨 쉬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잖니. 그때 음악은 우리를 전율하게 해. 그 신비를 우리는 설명할 수가 없지... 말이 그런 일을 할 때, 우린 그걸 시라고 부른단다.” 시적 정취는 흔히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전유물 같이 묘사되지만 이 그림책에 나오는 시적 순간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음악은 많은 신비를 품고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천재의 음악으로 요약한다면 그는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느껴진다. 누구보다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작곡가이며, 천상에 속한 음악을 작곡했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있는 피할 수 없는 삶의 굴레가 그에게도 있었다. 야심찬 아버지와 직업적 불안정, 가난과 주변의 몰이해, 질병도 그를 피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음악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가 고된 삶에 함몰되었다면 그의 작품에 담긴 고결함과 풍성함,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함을 설명할 길이 없다.
모차르트는 모두 2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이 중에서 제23번은 1786년에 완성한 성숙기의 작품이며 시적 감성이 가득한 협주곡이다. 만약 청중을 압도하려고 한다면 이 작품은 최상의 선택이 아닐 것이다. 강한 개성으로 많은 덧칠을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비어있어도 밋밋하다. 이 작품에서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와 경쟁하거나 압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허물없는 사이에서 그러하듯 내밀한 감정을 오밀조밀 주고받는다.
작품은 전3악장 구성이며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선율이 특징적이다. 1악장은 오케스트라가 먼저 두 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이어서 독주 피아노가 두 주제를 연주한다. 낙천적이며 활기가 가득하다. 2악장은 특별히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악장이다. 섬세한 아름다움이 순간순간을 감싼다. 3악장은 쾌활하며 역동적이다. 물결치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음표들이 빛을 가득 머금고 있다.
예술의전당 2021년 교향악축제 프로그램북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