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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Jul 17. 2024

말러 | 교향곡 제4번 G장조

어딘지 불편한 천국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넉넉한 시선 

이 작품에서는 모차르트와 대척점에 있는 듯한 거대하고 심각한 교향곡 작곡가 말러에게서 모차르트풍의 명랑하고 천진스러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행복하고 충만한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경쾌한 썰매 방울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말러는 여름휴가 때에만 그의 작곡 오두막에 틀어박혀 가까스로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96년에 교향곡 제3번의 작곡이 끝난 후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의 오랜 꿈이었던 빈 궁정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해 지휘자로서 빛나는 전성기를 보내던 그는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바쁜 일정으로 인한 건강의 악화와 창작력의 고갈로 고통스러워했다.       


1899년 여름휴가가 끝나갈 무렵, 오랜만에 말러는 새로운 교향곡에 대한 영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휴가는 10일 밖에 남지 않았고 이것은 교향곡을 완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는 걸으면서도 작곡을 할 만큼 결사적이었다고 한다. 말러는 작곡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크게 절망했지만 다음 해 여름에 알아보기 힘든 초고를 다시 펼치고 본격적으로 작곡을 했다. 작품은 1900년 여름에 완성되고, 1901년 11월 25일에 말러의 지휘로 초연됐다. 그가 새로운 교향곡을 발표할 때마다 따라붙는 격한 반응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말러가 순수함을 이용해 자신들을 조롱했다고 여긴 이들도 있었다.      


말러는 이 작품 마지막 악장에 그가 이전에 작곡했던 가곡 ‘천상의 삶’을 인용했다. 이 가곡은 독일 민요 시집 ‘어린이의 마술 뿔피리’에 기초한 것으로,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천국의 삶을 천진하게 묘사했다. 말러는 처음에 이 작품을 6악장으로 구상했지만 다음 해에 고전적 4악장 구성으로 바꾸었다. 작품은 즐거운 썰매 방울소리로 시작해서 천상에 대한 어린이의 환상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마냥 평화롭기만 하지 않다. 그곳에는 어딘지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고 고통스러운 지상의 삶이 하나로 붙어있다. 이것은 양면적인 이상향이다.      


1악장은 크리스마스 썰매 방울소리를 연상시키는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도입부로 시작한다. 중반부에서 모든 것이 얽히며 이 안온한 세계는 무너진다. 트럼펫이 장송행진곡 풍으로 불길하게 울릴 때 함께 들리는 방울소리는 이제 다소 기괴하게 들린다. 2악장은 음산한 음악과 유쾌한 음악이 한 쌍을 이뤄 춤을 추는 기묘한 죽음의 무도다. 3악장에서는 안식과 탄식이 함께 한다.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로 감싸듯 평화롭게 이어지다 오보에의 애절한 탄식으로 바뀐다. 두 주제가 투쟁하며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후에 천국의 문이 마침내 열린다. 4악장은 소프라노와 함께 천상의 삶을 누리는 기쁨을 노래한다. 마음껏 먹고 마시며 뛰놀 수 있는, 어린 아이에게 모든 것이 즐겁게만 느껴지는 이 풍요로운 천상은 사실 포획과 도살 같은 이면을 가지고 있다. 고기를 즐기기 위해 다른 생명의 희생이 필요한 이곳은 죽음의 그림자가 붙어있는 천국인 것이다. 어딘지 불편한 이 천국은 말러가 붙인 ‘패러디의 느낌 없이’라는 지시어 때문에 더 이중적으로 다가온다.      



삶의 이면과 모순을 여과 없이 바라보는 어린이의 시선. 이로 인해 삶의 양면성과 이중성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이 시선은 실제 어린이의 시선이 아니기 때문에 냉소로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중심 풍경에는 정겹고 그립고 따스한 빛이 스며있다.  이 눈빛은 방관자의 냉소나 순진무구한 동심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넉넉한 시선이다. 이 작품은 말러의 다른 교향곡에 비해서 길이도 짧고 간결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썰매 방울소리로 시작하는 이 교향곡은 그의 다른 교향곡들처럼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모험으로 이끈다.       




예술의전당 2021년 교향악축제 프로그램북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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