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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ver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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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werty yui Sep 13. 2016

첫째인사람은양보와희생으로자신의 존재를증명하려한다ㅡ

마이클 니만은 같은 선율을 반복하여 사람을 미치게 한다ㅡ

오랜만에 밀린 잠을 자고 알람 없이 눈을 떴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일어나는 삶은 이렇게나 행복하다. 시간이 남아 밥통에 쌀을 올리고 어제 보다 만 영화를 봤다. 여러 번 본 영화였지만 며칠 전 친구에게 추천한 것이 생각나 어젯밤 다시 찾아봤다. 밥을 먹고 영화에 집중하려 할 때쯤. 오전 11시 42분. 첫 번째 알람이 울렸다. 씻고 출근 준비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상사가 주말 동안 밀린 일들을 나에게 풀어놓았다. 상사는 지시사항을 혹시나 까먹을까 서너 가지 일들을 두서없이 말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일을 빨리 처리하면 꼼꼼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래서 꼼꼼하게 하면 일이 굼뜨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중간 어디쯤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굳이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그런 사람들과 밥을 먹기 싫어서 사양을 했더니, 나는 말없고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격증 몇 장을 발급했고, 회사 계좌로 70여만 원 정도를 입금했으며, 대구 공연용 악보를 편집했다. 퇴근시간 30분을 남기고 일을 끝냈다. 상사는 어린 여자 강사에게 자기가 이 회사를 어떻게 키웠는지, 몇 년 전 공연에서 있었던 자신의 활약상,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노하우 따위의 무용담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상사가 주변 사람들에게 수없이 반복하고 변주했던 레파토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치지도 않고 어린 여자 강사에게 또다시 주절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흥분했고,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여자 강사는 처음엔 정말요? 우와.. 등의 말로 맞장구를 쳐 주었다. 상사의 무용담이 20분이 넘어가자 강사는 네.. 네 거리며 적당히 귀찮은듯한 뉘앙스를 섞어 추임새를 넣었다. 강사의 반응이 심드렁해진 것을 뒤늦게 눈치챈 상사는 급하게 이야기를 끝내고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너무 갑작스레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에 마치 에곤쉴레의 작품이나 존케이지의 음악을 접한 기분이 들었다.


퇴근길. 평소보다 차가 많이 막혔다. 사거리 신호를 기다리다 갑자기 얼마 전부터 맴돌기만 하던 노래 제목이 생각났다. 마이클 니만의 Debbie. 이 노래를 찾으려고 별 지랄을 다 했을 땐 결국 기억이 안 나 포기했었는데.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노력 없이 한순간에 찜찜함이 해결됐다. 나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냈다. 며칠 전부터 맴돌던 그 핸드크림 향의 근원을 쫓기 위해서였다. 일어나서 갓 지은 밥을 먹다 돌이 씹혔고 집에 가는 도중에 자동차 접촉사고가 있었고 하늘의 구름이 예뻤지만, 제례하옵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보라색 식물은 가지 말고도 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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