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ver the Mo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werty yui Sep 21. 2016

ㅡ쁘띠마망 향기가 날 것 같은 여자에게서 얻은 교훈 ㅡ

눈을 뜬 곳은 피카소의 '4cats' 모작이 걸려있는 모텔방이었다ㅡ나는 모텔 밖으로 나와 여름밤 축제가 한창인 광장 속 군중들을 뚫고 뒤켠의 한적한 골목길을 향해 걸었다ㅡ가로등불빛은 축축한 골목골목을 화려하게 적시고 있었다ㅡ나는 파즈즈--소리를 내고 있는 낡은 네온사인 간판을 올려다보았다ㅡ나의 아지트였다ㅡ나는 문을 열고 불 꺼진 눅눅한 방으로 들어갔다ㅡ그곳엔 서너 명의 사람이 소파에 엉켜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내가 들어왔음에도/ 모두 낡은 브라운관 티비를 향해 있었다ㅡ어두운 방, 티비에서 새어 나온 깜박이는 코발트블루빛이 ㅡ그들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ㅡ왠지모를 아늑함에 나도 그들과 섞여 멍하니 티비를 쳐다보았다ㅡ

잠에서 깨니 아직 새벽이었다ㅡ오후에 있을 약속 때문에 일찍 누웠더니 너무 빨리 일어났다ㅡ일어난 김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ㅡ주차할 곳은 있나? 근처 맛집은? 약속 장소까지 걸리는 시간은? 식사 후에 놀러 갈 곳은? 한 시간 남짓 알아보다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ㅡ약속시간까지 아직도 다섯 시간 정도 남았다ㅡ안 되겠다ㅡ 좀 더 자야겠다ㅡ

가끔씩 수채화 같은 사람을 만난다ㅡ여행도 가야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녀야 하고 기타도 배워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ㅡ이런저런 것들이 도화지 위에 번진다ㅡ그런 사람이 한 곳에 몰입하면 도화지가 구겨지거나 찢어진다ㅡ그런 사람에게 선택과 집중을 강요하는 건 오만이다ㅡ나도 잘 알고 있지만 반복되는 표현기법 속에서 약간의 자극은, 그림을 좀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ㅡ 어쨌든.다행인것은,마지막엔.결국, 누구나 작품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ㅡ비록 낙서 수준의 인생일 지라도ㅡ

늦었다ㅡ늦은것 같다ㅡ너무 많이 자 버렸다ㅡ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ㅡ차를 가지고 갈까 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주차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지하철역으로 갔다ㅡ지하철안에는 적당히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적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ㅡ강남역에 도착하니 20분 정도가 남았다ㅡ약속장소인 카페로 들어가 익숙한 얼굴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ㅡ카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그 건물 지하에 있는 중고서점으로 내려갔다ㅡ사지 않을 책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웠다ㅡ약속시간 5분 전, 어디쯤 왔는지 문자를 보내고 다시 서점 안을 기웃거렸다ㅡ우리나라 작가 코너에서 걸음을 멈추고 제목을 훑어보다 황석영 단편집을 꺼내들었다ㅡ 계산대로 가려는데, 아까부터 누군가 옆에서 자꾸 알짱거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ㅡ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ㅡ미정이었다ㅡ

매거진의 이전글 첫째인사람은양보와희생으로자신의 존재를증명하려한다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