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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ver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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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werty yui Sep 29. 2016

결막모반이 있는 여자의 왼쪽눈을 남몰래좋아한다는것ㅡ


서론
스타벅스 카페의 딱딱한 의자가 싫었다ㅡ빨리 먹고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ㅡ미정에게 예부룩의 안락함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ㅡ미정은 능숙하게 핸드폰 어플을 이용해 커피를 주문했다ㅡ얼마 후 미정이 아메리카노 아이스 한 잔과,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카운터에서 가져왔다ㅡ내가 커피에 시럽이 안 들어 있다고  하자ㅡ내 커피를 들고 시럽을 넣으러 어디론가 갔다 왔다ㅡㅡ한두 시간이 지나고, 우린 블루베리 치즈케이크와 마카롱 몇 개를 더 주문했다ㅡ대화 도중에 나는 냅킨을 비벼 길게 만들었고, 미정은 그걸로 머리를 땋듯이 매듭을 묶었으며, 나는 그 매듭을 미정의 새끼손가락에 묶었다ㅡ나는 블루베리 한 알을 포크로 떠 미정의 입 앞에 가져갔다ㅡ 미정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냠' 하고 받아먹었다ㅡ나는 큭큭 웃다 쓰러졌다ㅡ미정은 나에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뿐 이라고 선고했다ㅡ자신의  동선에 나를 끼워 넣은 모양이었다ㅡ 기분 나빠해야 할 상황인 것 같은데 화낼 타이밍을 놓쳤다ㅡ미정은 R.K.에게 일본 여행 때 사온 녹차인가 뭔가를 주러 갔다가,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가야 한다고 했다ㅡ화낼 타이밍이었다ㅡㅡ스타벅스 로고인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인가 뭔가에 나오는데ㅡ그녀는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해 죽였다고 한다ㅡ그래, 미정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ㅡ


설탕
너는 순간의 사랑을 부인하고 있어ㅡ그런건 부정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곤 해ㅡ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줘ㅡ오직,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만이 숭고하고 진정한 것이라고 믿는 건 아니지?ㅡ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 알잖아ㅡ인정?ㅇㅇ그럼  너의 기준에서ㅡ 사랑의 기간은 며칠인데? 몇 달? 몇 년? ㅡ사랑에 기준이 있나.? 아니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문제인가? ㅡ순간의 사랑, 흐릿한 사랑, 애매한 사랑, 너나들이하는 사랑, 먹고 먹히는 사랑 ㅡ그냥 취향의 문제일 뿐이잖아ㅡ커피처럼 ㅡ커피에 설탕을 넣으면 커피맛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 ㅡ애초에 차의 발전은 ㅡ 설탕의 섭취를 도와주는 데에서부터 비롯된거야ㅡ설탕을 죄책감 없이 많이 먹기위해ㅡ커피란게ㅡ과일 속 씨앗을 말리고 태워서 잘게 부순 후 뜨거운 물에 우려낸 거잖아ㅡ마시면 기분은 좋은데 탄 것은 맛없으니까 설탕이나 우유를 넣은 거고ㅡ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들은 독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듯이ㅡ진정한 사랑이 아니다?ㅡ진정한 커피맛을 모른다?ㅡ그냥 취향의 문제일 뿐인거ㅡ그래ㅡ솔직히 내 취향을 말하자면 ㅡ따뜻하게 데워진 데미타세 잔에, 약배전으로 고르게 볶은, 잘 숙성된 원두 62알을, 싸구려 그라인더에 쌀알보다 조금 작게 갈아서, 약불로 느리게 뽑아낸 후, 각설탕 두 개를 젓지 않고 조용히 가라앉히고, 거칠게 뽑힌 크레마를 조금 마신 뒤, 얼음물 한 모금으로 입을 헹궈주면서, 잔의 1/3을 남기고 원샷 후에, 잔에 남은 1/3이 식으면, 가라앉아 녹다 만 설탕과 함께 원샷ㅡ이지만 제일 맛있었던 커피는ㅡㅡ

변명
약자를 괴롭히는 건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ㅡ다만, 본능을 그대로 표출하는 사람은 짐승 같은 사람이고,
대부분은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간다ㅡ 억누르면 어떤 식으로든 반작용이 발현되는데ㅡ

나의 경우 '친절'  '장난' 또는 '사랑'으로 발현되는 듯하다ㅡ

未定
미정의 왼쪽 눈 안에는 점이 나 있었다ㅡ홍채 옆에 그 검은 점은, 서로의 시선이 부딪칠 때마다 내 눈을 끌어당겼다ㅡ그럴때면 미정은 눈을 피하는 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물러서지 않고 내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ㅡ그 눈을 계속 보고 있으면, 내 눈은 점점 초점이 흐려졌고ㅡ 그 눈 속 갈색 홍채가 차츰 달이 떠 있는 것처럼 변하더니ㅡ흰자 위에 그 점이 별처럼 빛났다 ㅡ나는 미정이 입은 분홍색 린넨차이나셔츠ㅡ의 팔 쪽에 놓인 자수 꽃을 만지작거렸다ㅡ미정은 내가 입고 온 티 팔뚝 쪽에 달린 지퍼를 열어보았다ㅡ미정은 당고머리를 해서 인지 한 살 더 먹어서 인지, 꽤 단아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ㅡ이번 만남에서도 우리는 손크기를 쟤보았다ㅡ갑자기 라흐마니노프 쇼피협 1번이 생각났다ㅡ미정은 가방에서 비누향 핸드크림을 꺼내 자신의 손등에 조금 묻혔다ㅡ그리고는 내 손등에도 핸드크림을 조금 짜 주었다ㅡ어디서 많이 맡아본 냄새였다ㅡ비누향 핸드크림을 권하는 여자ㅡ그 비누향 핸드크림이 우리 집 노란색 비누냄새랑 똑같다는 걸, 집에 와서야 깨달았다ㅡ 손을 가꾼다는 것ㅡ에 대해 생각했다ㅡ미정은 나를 앞에 두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ㅡ내가 카메라를 들이밀자 핸드폰으로 얼굴을 가렸다ㅡ미정은 얼마 전에 일본에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ㅡ핸드폰엔 波라는 글자의 금색 스티커가 붙어있었다ㅡ'카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가 생각났다ㅡ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판화형식으로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 이란 뜻ㅡ드비쉬가 이 그림을 보고 'La Mer' 를 작곡했고, 고흐는 우키요에를 흉내낸 그림들을 그렸다


그 외
일본ㅡR.K-춤바람 ㅡR.K.에대한 죄책감-예전에도 얘기했었나ㅡ 사탕ㅡ후쿠오카ㅡ고양이섬ㅡ이름점62%ㅡ사진숨김ㅡ배추ㅡ남친과 헤어짐ㅡ강아지를 사고 말고ㅡ취직 ㅡ특허 관련 자격증이랬나ㅡ결혼 ㅡ서른 ㅡ어른 ㅡ이상형 ㅡ축의금 ㅡ미정과의 결혼 ㅡ未定의 未來 ㅡ설 전후에 한번 ㅡ

사진
 이날, 총 139장의 사진을 찍었다ㅡ 핸드폰 사진이 선명하지 않게 나온다는 말에 ㅡ이때다 싶어 지식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나는 안드로이드폰이 낯설었고 폰의 카메라 기능은 생소했다ㅡ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ㅡ입자가 굵게 나오는 것은 iso 설정 때문일 확률이 높으니까ㅡp모드인 상태에서-한낮 야외일 경우엔 iso 150 전후, 밤이나 실내일 땐 800 전후로 맞추는 것이 좋다ㅡ빛이 많을 때가 찍기 유리하다ㅡ어두운 곳에서 선명한 사진을 찍으려면 삼각대가 필요하다ㅡ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갔다ㅡ담배를 피우는 동안 몰래 사진을 찍다 미정에게 들켰다 ㅡ미정은 전자담배로 바꾸길 권했다ㅡ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ㅡ길가에 있던 가오나시 인형 뽑기를 몇 판 했다ㅡ지하철역 입구에서 우린 바이바이했다ㅡ나는 뭐라고 툴툴거리며 미정의 뒤통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ㅡ미정은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ㅡ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ㅡ좋아하지만 싫은 척, 싫어하지만 좋은 척 ㅡ에 대해 생각했다ㅡ

이틀 뒤 -관측이래 가장 강한 지진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덮쳤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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