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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yi Jung Apr 14. 2020

인생의 술집에 대한 이야기

더빠와 책바

술을 전혀 안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카페로 이 글을 읽어주면 좀 더 공감이 가지 않을까 싶다.


최고의 솔루션은 아니지만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를 겪거나 영화 속 캐릭터 같은 기분을 내고 싶은 날에는 나는 홀로 술집으로 간다. 신촌 아트레온이나 메가박스에서 혼자 밤에 극장에서 내리기 직전의 영화를 보고도 술집으로 향한다.


내 행선지는 대체로 둘 중 하나다. 더빠이거나 책바이거나.


두 곳 모두 끝에 bar가 붙었다는 것과 닷지가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연희동에 살 적에 두 곳 모두 걸어서 집에 오기 충분히 가까웠다.



먼저, 더빠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볼까. 더빠에 간 세월은 이제 10년에 이른다. 가까운 친구의 제안으로 걸음했던 곳에서 혼자, 둘이, 여럿이, 그보다 여럿이서 마시고,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고, 축하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늘 그곳에 데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그 사람도 좋아하는 지 테스트 하는 것이랄까.


그렇게 희노애락이 담긴 공간이다. 하도 자주가고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어떤 친구는 내가 더빠에 지분이 있는 줄 알기도, 사장님과 사귀는 줄 알기도 했다. 물론 그런 오해는 모두 풀렸지만. 이사를 가고도 종종 더빠에 들렀다. 영화를 보고 나와 머릿속을 가득 메운 어떤 감정을 정리하고 들어가고 싶은 밤에는 더빠에 들러 맥스 500을 앞에 두고 신청곡 종이에다 영화 감상을 적곤 했다. 동생도 내가 심야 영화를 보고 나서 연락이 닿지 않거나 늦으면 더빠에 들러 집에 오겠거니 했다.


한참 열심히 더빠에서 술을 마시던 대학시절 사장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사장님 저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것 같아요. 이대로도 괜찮을까요?” 바보같은 질문이고, 사실 진짜 질문은 이거였다. 

‘이렇게 술 처마시다가 인생 망하면 어쩌죠?’ 

신촌 술집 사장 경력 1n차에 빛나는 사장님은 찰떡같이 알아 들으시곤 이렇게 말해주셨다. “이것도 다 한 때야. 나중엔 오고 싶어도 못 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직 인생은 망하지 않고 다행히 흘러가고 있고, 나는 더빠가 그리운 날에는 사장님 인스타에 좋아요를 누르고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신다. 내 청춘의 무덤인 그 곳이 영원하길 바란다.



한편 책바는 비교적 역사는 짧지만 집이 아주 가깝다는 이유로 하루 마무리를 20대 후반에 자주 한 곳이다. 대부분 혼자 갔다는 것이 더빠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책바는 동생을 따라 처음 갔다. 대화보다는 집중, 술과 음악에 그리고 책에 취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그 이후 나는 종종 꼭 봐야할 리포트가 있거나, 나랑 관계없는 무용하고 아름다운 뭔가를 읽고 보면서 스트레스를 잠재우고 싶을 때 자주 들렀다. 아 또 하나, 회식 하고 딱 한 잔이 아쉬울 때도 책바를 찾았다.


책바는 초반엔 스위스 재즈 라디오를 주구장창 틀었다. 그 중간에 라디오 채널 광고가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정겨웠다.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한 잔 받아서 뭔가 읽거나 멍을 때리다, 사장님과 수다를 떨다 집으로 오곤 했다.


특히 내가 기억하는 순간들이 몇개 있다. 여름 인턴을 하며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랑 실컷 싸우고 와서는 혼자 책바에서 화를 삭혓고,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책바에서 괜히 비싼 술을 마시며 자축을 했고, 첫 이직을 하기 전 레주메를 책바에서 썼고, 결국 이뤄지지도 않을 짝사랑 고민을 사장님과 진지하게 나눴다.


집에 코앞인 바람에 다 취해서 책바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를 위스키를 마시다가, 괜히 옆사람 술을 사기도 했고, 사장님이랑 같이 퇴근하는 진상 손님이었다. 하지만 아직 짧은 나의 커리어에서 가장 업무강도가 높았던 기간 동안, 위스키가 아니고선 위로가 안될 것 만 같았던 시절엔 응급실 같은 곳이었다.


일본에 오기 전 인사를 나누면서 평생 떠날 것 처럼 굴지 말라던 것을 문득 떠올리면서, 오늘의 나는 책바의 ending song of March playlist를 들으면서 도쿄집에서 와인을 마신다.


책바에서는 마감 전에 손님들이 한 곡씩 신청곡을 적고 그걸 들으며 마감을 시작한다. 노래를 들으며 그 마감들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상상을 하며 술을 마시면 술맛이 좋다.



적고보니 더빠에는 서사가, 책바에는 장면이 남았다. 


둘 다 무척 좋은 곳이다. 여길 무조건 가보시라 추천한다기 보다는, 연희동, 신촌에 들르시거든 꼭 한 잔 하고 가시라. 그리고 각자의 인생의 술집을 찾는 행운이 여러분에게 함께하길.


The Bar @신촌

https://www.instagram.com/explore/locations/3167731/

책바 @연희

https://www.instagram.com/chaeg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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