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되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산특에 서명하고 간호사에게 지금까지 종합적인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간호사가 의사에게 전달해 면담을 잡았다. 의사는 원위부담도암이라고 했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1기는 거의 없어요. 증상이 발현됐다면 2기 이상이지.”
특정 부위에서부터 세를 확장해 퍼져가는 다른 암과 달리 길 위에서 시작하는 담도암은 혈관을 타고 제멋대로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전이 및 재발률이 높았고 완치율은 20%에 불과했다. 의사는 PET-CT를 촬영한 다음에는 지난번 실패한 ERCP를 다시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경로를 바꿔볼 거예요.”
의사는 종이에 그려진 그림 두 곳에 x자를 표시했다. 십이지장에 구멍을 내서 담관의 아래쪽으로 들어간다는 거였다. 나는 좀 의아했다.
“어차피 황달은 배액관으로 해소되고 있고, 스텐트는 나중에 PET-CT 결과 나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되죠. 2기 이상이면 항암 들어가야 하니까 그땐 스텐트 해야 하고. 주머니는 불편하니까. 어떡할래요?”
“제가 아버지와 상의해 보고 오전 중으로 말씀드릴게요.”
자신이 암인지 모르는 아버지는 불편한데 빨리 빼야지, 했다. 암세포 옆에 스텐트를 밀어 넣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찜찜했지만 아버지를 설득하려면 본인이 암임을 알려야 했다. 그날 시골집으로 와 동생과 통화했다. 아버지에게 암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려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원위부담도암이 무엇이고 생존율이 어떻고, 이번에 다시 시도하는 시술의 방법과 위험성, 암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아버지가 암이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시술받기로 결정한 것 등등. 동생은 야근 중이었는지 길어지는 이야기에 답답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결론만 얘기해.”
그 말이 나를 자극했다.
“야, 결론이 어디 있냐. 다 과정이지.”
수화기 너머로 동생의 헛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높아진 내 언성 때문인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나를 더 뒤흔들었다.
“아니, 그냥 누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가 하고 싶은 게 어디 있어. 나도 이런 게 처음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상의하는 거 아니야. 결론만 이야기하라니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나보다는 누나가 더 많이 생각했을 테니까 생각하는 대로 하라고.”
“그럼 네가 와서 얘기하든가.”
동생의 웃음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어이없어 하는 것 같았다. 어이없는 쪽은 나였다. 왜 모든 역할이 나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왜 자신이 내려와서 얘기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지, 왜 먼저 병원에 오겠다고 말하지 않는지 구태여 묻지 않을 뿐이다. 동생은 자신이 이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는 양 점잖이 말했다.
“누나가 수고하고 있는 거 알아. 힘든 거 아는데 그렇게 나한테 한탄하는 건 아니지.”
“아, 뭔 소리야. 누가 한탄을 해.”
“한탄하는 것처럼 들려.”
“오늘 대화 내용 중에 한탄한 내용 아무것도 없었어. 너야말로 왜 없는 말을 혼자 곡해해서 듣냐? 네가 어떻게 듣는 것까지 고려해서 말해야 되는 거야? 그리고 금요일에 무슨 암인지 왜 안 알려줬어. 진단명 안 나온 줄 알았잖아.”
또 한 번 기가 찬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내가 할 일 안 한다고 비난하는 거야?”
“아, 또 뭐가 비난이야. 왜 얘기 안 했냐고 묻는 건데.”
“나는 몰랐어. 암이라고 해서 그렇게 전달했고 누나처럼 무슨 암인지는 물어볼 생각은 못했어.”
사이.
“그래, 알았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끓어오른 감정을 삭이기 위해 한동안 차 안에 있었다. 동생은 자신이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결론만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다고 했지만, 나는 동생의 자존감이 이토록 낮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겉보기에 동생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오면 설거지를 하거나 두 아이를 돌보았다. 주말에도 수시로 출근했고 일하지 않으면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로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저 모습이 어쩌면 (어릴 적 자신을 괄시하던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혹은 비난받지 않기 위해 아주 일찍부터 처신한 자기방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동생의 기를 죽였던 아버지의 영향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고 나만큼이나 동생도 아버지와 풀어야 하는 응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차 안에서 통화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아빠한테 뭔 일 있냐? 뭔 통화를 이렇게 오래 해?”
나는 둔한 엄마가 이번에는 누구보다 빨리 눈치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