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진단

by bxd


병원의 일정은 시시각각 바뀌었고 암의 전이 및 진행 정도를 확인하는 PET-CT가 다음 주로 잡혔다. 다음 주 중요한 검사가 잡혔다고 하자 아버지는 또 검사받을 게 뭐가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암이 어디까지 퍼져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대신 지금까지는 황달을 잡은 거고 황달이 왜 생겼는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둘러댔다. 아버지는 내 말을 믿는지 아니면 나와 말하기 싫은 건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입원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아버지는 더 열심히 주식 방송을 챙겨보았다. 아침 시황 방송을 보다 장이 시작되면 MTS를 켰고 오전 내내 거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심경이 복잡해졌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것보다야 났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아직 정신 못 차렸다고 생각했다. 뭐가 중한지도 모르고. 그 시간에 자신의 생을 돌아보거나 가족 간의 뿌리 깊은 오해를 풀어보거나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구상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 한 번은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재미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병원비 벌어야지, 라며 나의 질문을 일축했다. 당연한 걸 쓸데없이 왜 묻느냐는 것처럼 들렸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한 결 같이 돈과 성공을 추구했고 평생 돈을 벌기 위해 새벽같이 뛰어다녔지만 결국 가난을 면치 못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다. 아버지처럼 돈만 좇으며 일만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내겐 돈보다 가까운 이와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


금요일은 동생에게 맡기고 서울에 올라왔다. 모처럼 만의 여유였지만 그새 병원 생활이 몸에 뱄는지 일찍 눈이 떠졌다. 목마른 고무나무에 물을 주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데 동생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MRI 결과가 나왔는데 암이래, 짧게 전하고는 끊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충격은 없었다. 다만 가만히 앉아있었을 뿐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이었다.


“보호자님, 어디세요?”

“아, 오늘 저는 안 가고요. 동생이 병원에 있을 거예요.”

“혹시 남자분이실까요?”

“네, 맞아요.”

“그분 가신 거 같은데.”

“벌써요? 방금 통화했는데.”

“이거 산특* 서명하셔야 하는데.”

“아... 그거 월요일에 제가 가서 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그렇게 할게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부자끼리 대화라도 하지 뭐 그리 급하다고... 분명 아버지가 할 거 없는데 가라고 했을 것이다. 나한테도 맨 가라고 하니까. 알아서 한다고 쏘아붙이는 나와 달리 동생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눈치를 많이 보았고 군말 없이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강한 야심이 있는 아버지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동생을 대놓고 못 마땅히 여겼고 그것이 동생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반면 나는 아버지와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을 함께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시키기를 좋아했고 아버지가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있는 옷을 끌어안고 잠들곤 했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역전이 되어 아버지가 하는 말 족족 반발하는 나와 달리 두 아이의 어엿한 아버지가 된 동생은 아버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주말에는 내내 집 안에 있었다. 입맛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 그마저도 흥미가 나지 않아 마냥 누워 지냈다. 그나마 병원에 있을 때는 움직일 힘이 났는데... 병원 일정을 소화하려면 뭐라도 먹어야 했고, 의사에게 질문하려면 공부해야 했다. 틈틈이 들어온 일을 하고 아버지가 시술실로 들어가면 아버지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대신 받으며 고구마 업무를 처리했다. 모순적이게도 아버지는 내가 스러지지 않고 버티게 하는 동력이었던 셈이다.




*산정특례 - 암 등 중증질환자의 진료비를 정부에서 10%로 경감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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