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종일 세상이 컴컴하더니 오늘은 온통 새하얬다. 아침부터 쉼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휴게실 안 환자와 보호자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자신들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뉴스에서는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이 나와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과도로 당근을 잘라먹으며 오늘 있을 배액관 시술에 대해 검색했다. 옆구리에 구멍을 내 간으로 들어가 나무줄기처럼 뻗은 담관 끝에 관을 연결해 담즙을 밖으로 꺼내는 시술이었다. 배출된 담즙은 옆구리에 주머니를 착용해 저장한다. 혹부리 영감처럼 주머니를 덜렁덜렁 차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운이 나쁘면 평생. 배액관 시술의 부작용은 출혈이나 담즙 유출에 의한 복막염, 예후가 좋지 않을 경우 담즙 유출로 인해 암세포가 퍼질 수 있었다. 암세포가 퍼지든 평생 주머니를 차든 오늘은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황달이 오래되면 간 기능이 정지되거나 다른 장기에 손상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위험했다.
시술 시간이 가까워오자 어제 아버지가 예쁘다고 한 간호사가 왔고 함께 침상을 끌고 다시 혈관조영실로 향했다. 어제와 달리 아버지는 긴장한 듯 가슴에 양 주먹을 쥐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어제는 웃으시더니 오늘은 긴장하셨나 보네요.”
“그러게요.”
“원래 잘 웃으시나 봐요?”
“남한테는 잘 웃으세요. 가족한테는 인색하세요.”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 나는 아버지가 들으라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사실이기도 하니까. 간호사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조영실에 도착하고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어 있는 아버지의 정수리를 토닥였다. 타조알 같았다. 어미의 따스한 품이 필요한 타조알. 여지껏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사람이 있었을까. 아버지는 누군가의 애정 어린 손길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단단한 돌 같은 사람이 되진 않았겠지.
“아부지, 이번 거는 마취도 안 하고, 금방 끝나. 걱정하지 말고 잘하고 와.”
아버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그 모습이 꼭 겁에 질린 아이 같았다.
문이 닫혔다. 순간 울컥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못된 딸이었다. 오랫동안 아버지가 아프길 바랐다. 그것이 아버지를 멈추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일만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님을, 삶에 다른 가치가 있음을, 바로 옆에 가족이 있음을 아버지가 깨닫기 바랐다. 그 바람이 점차 실현되고 있다. 부모가 아프길 바라는 자식이 있다니. 나는 참 못돼 처먹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옆구리에 달린 주머니를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아부지, 성공했네?”
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뭐가 달려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척 기뻐하는 척 말했다.
“아부지, 잘 된 거야. 이거 오늘 실패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주머니는 나중에 뺄 수도 있으니까.”
언제가 나중일까. 암세포가 꽉 막고 있는데 거기에 다시 스텐트를 삽입할 수 있을까. 그러다 암세포가 자극을 받아 퍼지기라도 하면.
충격을 받은 아버지를 뒤로 하고 서울에 올라왔다. 내일 다시 병원에 와야 했지만 집에 가 엄마를 보면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버지도 모른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서울에 올라와 동생에게 전화했다. 그간의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며 아버지가 암일 수 있다고 전했다. 동생은 다 듣고서 암이 아닐 수도 있잖아, 했다. 내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