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시술-ERCP

by bxd


어둡고 음침한 것이 참 기분 나쁜 날씨였다. 어제 저녁 구워둔 고구마를 싣고 새벽 같이 출발했지만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출근 시간까지 겹쳐 회진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했다. 행여 의사를 보지 못할까 무거운 고구마 박스에 노트북 가방에 과일을 깎아먹을 과도와 아버지의 베개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뛰었다. 허리와 목에 디스크가 있는 아버지는 비싼 메모리폼 베개보다 어디서 사온 싸구려 베개를 벴다. 딱딱하고 높아 목에 좋지 않아 보였고 브랜드도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유독 그 베개를 선호했다.


침상의 커튼을 열어젖히자 아버지가 나를 보고는 짧게 왔네, 했다. 아버지는 어제 병원을 나설 때와 마찬가지로 침대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주식방송을 듣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구마가 담긴 박스를 들고 간호사들이 있는 중앙 통로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어제 문진표 작성을 도와준 간호사에게 고구마를 건네며 함박웃음 지었다.


“내가 농사지은 거예유.”


간호사는 뭘 이런 걸 다 가져오시냐며 웃었고 이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의례적인 인사말이 오가는 과정을 뒤에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한테 운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느냐, 고구마 구워 오느라 수고했다 같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분이니까. 남한테는 친절하고 나와 엄마한테는 굳게 마음을 닫는 분이니까. 다만, 고구마 하나 정도는 빼놓지. 점심에 먹을 것도 없는데. 그게 못마땅했다.


처음 만난 의사는 오늘 뭐 하는지 아시죠? 하고 물었다. 아뇨, 몰라요, 라고 답하자 의사는 다소 놀란 눈치로 몰라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어딘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설명해 달라고 했다. 의사의 말을 요약하면 담관이 막혀 담즙이 배출이 안 돼 황달이 생겼으며, 담관을 막고 있는 것이 담석인지 암인지는 봐야 아는 거고 오늘은 일단 스텐트를 삽입하여 담즙이 배출되도록 한다고 했다. 시술은 오후라고 했다. 아버지는 의사의 설명을 못 알아듣는 거 같았다. 시술 이름이 ERCP(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 조영술)라는 것은 이후 간호사에게 따로 물어 확인했다.


시술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주식을 했다. 심각성을 모르는 게 틀림없었고 오히려 그 편이 나았다. 나는 아버지노트북에 인터넷과 무선 이어폰을 연결하고 넷플릭스 계정을 저장한 후 사용법을 설명해줬다. 아버지가 오징어게임2를 보는 동안 나는 휴게실로 가 과도로 사과와 배를 깎아먹으며, ERCP의 시술 과정과 부작용 등을 검색했다. 복통, 염증, 출혈, 안 좋을 경우 담관과 췌장에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우적우적 사과를 씹어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오가 가까워 오는데도 세상은 어둑했다. 어딘지 성가시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날씨였다.


예정된 시간이 되고 아버지는 침대에 실려 혈관조영실로 이동했다. 아버지는 앞에 낯선 간호사가 있어서인지, 긴장을 풀기 위해서인지 실실 웃고 있었다.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아버지의 비어있는 정수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부지, 이거 30분이면 끝나. 자고 일어나면 되니까 긴장하지 말고 잘하고 와.”


나는 아버지의 핸드폰을 건네받고 나왔다. 기다리면서 아버지 핸드폰으로 걸려온 컴플레인 전화와 거래처 전화를 받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주어진 세 번의 기회 동안 10개의 퍼즐을 푸는 거였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연거푸 실패했다. 순간 불안해졌다. 이게 어떤 징조는 아니겠지. 음산한 날씨가 자꾸만 거슬렸다. 시술이 끝나고 아침에 본 의사가 보호자를 불렀다.


“오늘 시술 실패. 담석이면 뚫어보려고 했는데 꽉 막혀 있어서 뚫지를 못했어요. 내일은 다른 방법으로 할 거예요. 담관 위쪽으로 관을 삽입할 건데 담관 크기가 작으면 그것도 실패할 수 있고.”


의사는 시간에 쫓기듯 빠르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말했다.


“못 뚫었다는 거는...”

“암일 가능성이 커요. 암 진단 검사는 최대한 빨리 잡아볼 테니까. 일단 황달을 해결해야 하니까 내일 다시 해봅시다.”


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고 있었다.


시술실에서 나온 아버지는 마취가 덜 풀려서 그런지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실실 웃고 있었다. 함께 침대를 끌고 간 간호사가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보더니 물었다.


“아니, 왜 그렇게 웃으세요?”

“이쁘니까 웃지유.”


그 말을 하며 아버지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다 늙은 얼굴로 아이처럼 활짝. 저 웃음의 의미를 모르겠다.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한 번 스치고 말 사람한테 왜 저토록 웃어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나 엄마한테는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으면서. 본인의 상황을 알게 되면 그때도 웃음이 나올까.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네 아빠가 얼마나 예쁘게 웃는지 아냐? 나는 예쁘다기보다 얄미웠다. 타인을 향해 활짝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머리통을 한 대 때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병실로 돌아와 누워 있던 아버지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표정 없는 얼굴로 천장을 보며 말했다.


“뭐가 잘 안 된 모양이네.”


나는 어쩌면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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