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설치고 일어나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병원에 가고 아버지는 일하러 나간 뒤였다. 냉장고문을 열었다. 반찬통 사이로 날짜가 지난 불가리스 10개짜리 세 묶음이 보였다.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날짜가 지난 걸 잘도 구해왔다. 아무거나 주워오지 말라고 해도 아버지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분이었다. 덕분에 집은 여기저기서 가져온 고물과 언젠가 고쳐서 쓰려고 모아둔 폐가전들로 넘쳐났다. 낡아빠진 물건을 버리려고 하면 아버지는 자기 거는 버릴 거 하나도 없다고 큰소리쳤다. 나는 그런 집에 올 때마다 속에서 답답함이 올라왔다. 도저히 해소될 것 같지 않은 해묵은 체기 같은 거였다.
정오가 되자 아버지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왔고 나는 엄마가 아침에 끓여둔 찌개를 데워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아버지 맞은편에 앉았다. 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밥그릇에 코를 박고 부리나케 먹고 있었다.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목덜미 사이로 속살이 보였다. 노랬다. 나는 어제 보았던 빌리루빈 수치를 떠올렸다.
“아부지, 나 좀 봐봐.”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눈이 노랗네. 언제부터 노랬어?”
“좀 됐지.”
“목도 노래. 알고 있었어?”
“그려?”
아버지는 남 일인 듯 대답했다. 그동안 아버지의 눈을 볼 일이 없었다. 아버지와 마주 보고 대화한 일도 손에 꼽았고 밥을 먹을 때도 아버지는 우리와 눈 마주치지 않았다. 피부도 마찬가지였다. 햇볕에 그을려 까만 줄로만 알았지 아버지의 속살을 누구도 본 일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암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버지는 다시 밥에 코를 박고 먹었다. 나는 비어 있는 아버지의 정수리에다 대고 말했다.
“진료의뢰서 보니까 좀 심각한 거 같던데.”
내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일하러 나갔다.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아버지의 황달 증세를 알고 있었냐고 물으니 엄마는 몰랐다고 했다. 어떻게 부부가 돼서 맨날 같이 있는데 모를 수가 있냐고 하니 엄마는 네 아버지가 어디 엄마랑 얘길 하니, 하고 되받아쳤다. 나는 바로 수긍했다. 엄마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고구마 공장에 일하러 나갔다. 모두가 쉬는 주말 오후였다. 엄마 역시 한평생 아버지 옆에서 제 몸이 망가지도록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런 점에서 부창부수였고 천생연분이었다.
다음 날 오후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이동하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대답 없는 메아리에 불과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고 정면을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우리에게 이토록 높은 벽을 세워두고 있는 걸까.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을까. 언제쯤이면 저 벽을 허물고 나올 수 있을까.
“아버지는 단단한 돌 같애. 돌은 생명이 없어. 살아 있는 것은 온도가 있고 말랑말랑하기 마련인데 아버지는 아주 딱딱한 화강암 같아. 살아 있는 것들은 감각을 해. 내 몸이 어떤지,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내 감정이 어떤지 느낀다고. 근데 아버지는 감각 능력을 상실해 버린 거 같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거지.”
아버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했어도 금방 까먹을 것이다. 돌아서면 깜빡깜빡하니까. 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병원에 도착해 병실을 배정받고 간호사로부터 당분간 금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챙겨 온 불가리스를 먹지 못하는 데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신입생 왔어유.”
병실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같은 병실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나 엄마한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다정다감한 얼굴을 하고. 나는 그것이 어딘지 비굴해 보였고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가족에게는 한없이 고압적이면서 남한테는 굽실대는 저 모습을 볼 때면 정체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엄마가 챙겨준 짐을 정리했다. 종이가방에는 아버지가 배고플 것을 대비해 사과와 배, 귤, 생당근, 생무가 과도도 없이 들어있었다. 원시인도 아니고. 껍질도 안 까고 그냥 먹으란 말인가... 하긴, 아버지는 원래 껍질째 베어드시니까... 생각하며 냉장고에 넣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아버지는 다시 굳은 표정과 예의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나는 대답하고 아버지의 약봉지와 물병에 x 표시를 해뒀다. 의사의 회진 시간을 체크하고 병동을 돌며 탕비실과 화장실 위치를 확인하고 짐을 챙겼다.
“불가리스 가져갈까? 금식이라는데.”
“놔둬.”
“간다.”
“참, 내일 고구마 좀 갖고 와.”
순간 얼굴이 굳었다. 사람들에게 고구마를 나누어주겠다는 거였다.
“여기 소화기 내과야. 사람들 밥 못 먹는데 냄새나는 음식 가져오면 어떻겠어.”
“냄새가 왜 나. 오늘 밤에 굽는데.”
가족은 안중에도 없으면서 남은 챙기지. 빈정이 상했지만 알았어, 짧게 대답하고는 옷을 챙겨입었다. 아버지는 침대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으로 주식 방송을 틀었다.
“배웅 안 해줘?”
아버지는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엘리베이터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등을 두들겨주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