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와 다르게 조금은 심각한 목소리로. 엄마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며 내일 아버지가 병원에 갈 것이니 시간이 되면 가보라고 했다. 다음 주 허리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그것 때문이냐고 물으니 엄마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며 아버지가 지난주부터 몸이 이상하다고 했고 일주일 전부터는 어디서 이상한 걸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상한 것의 정체는 불가리스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버지는 병원에 가기보다 지인에게 전화해 조언을 듣고 불가리스에 몸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준다는 효소를 타먹고 있었다. 매일 같이 이상한 걸 타먹는 아버지를 보며 답답했던 엄마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걸 먹고 앉아있느냐며 병원에 갈 것을 재촉했다. 평소였다면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아버지지만 이번에는 본인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동네병원에 가 검사를 받고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마침 큰 병원에서 허리수술을 앞두고 사전검사를 했는데 오늘 전화가 온 것이다. 당장 병원에 오라고. 나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열차를 타고 아버지에게 전화했을 때 아버지는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진료 시간을 3시간이나 앞둔 시점이었다. 매사에 성실하고 부지런한 아버지는 병원 예약 시간 같은 건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주말도 없이 몸을 놀리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항상 바빴고, 오로지 일만 했고, 자신에게 무심했다. 하나뿐인 가족에게도. 지금 내려간다고 하니 아버지는 무심한 말투로 뭐 하러 와, 했다. 어딘지 심드렁하고 귀찮은 듯한 충청도 사투리였다. 그리고는 아직 기차 안 탔으면 취소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올 것 없다고. 나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며, 이미 열차가 출발했으니 곧 보자는 말을 남기고 끊어버렸다.
병원에는 예약된 진료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진료가 끝나고 1층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들고 있던 서류를 한 장 한 장 사진 찍으며 물었다.
“의사가 뭐래?”
“수술해야 된다네.”
“무슨 수술?”
“뚫어줘야 한다네.”
“뭘?”
“막혀있다네.”
“그러니까 뭐가?”
아버지와의 대화는 스무고개를 넘는 것보다도 힘들다.
“진단명이 있을 거 아냐.”
“몰라.”
“의사가 안 알려줬어?”
“의사가 담당이 아니라대.”
“담당이 아닌데 오늘 왜 오라고 해?”
“입원하라대.”
“왜 입원 안 했어, 그럼?”
“일해야지.”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아버지와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나는 아버지로부터 담낭과 제거라는 단어를 추가로 들었다. 담낭을 뭔가가 막고 있고 따라서 제거한다고 추론했고 인터넷에 담낭 제거를 검색한 후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는 사실까지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아버지는 사람을 구해 고구마 배달 업무를 인수인계 하고 일요일에 다시 입원하기로 했다. 나는 주말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머물렀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변기에 갈색 소변 자국이 굳어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갈색 소변의 원인은 간이나 신장 기능의 이상 혹은 내부 출혈로 인해 혈액이 배출되는 거였다. 갈색 소변을 보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불가리스를 먹은 것이다. 일주일이 넘도록.
그날 잠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다가 낮에 찍은 병원 서류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동네병원에서 작성한 진료의뢰서도 있었다. 거기에 적힌 수치와 용어를 검색했다.
Bilirubin (응급) 2.5 (황달 수치, 정상 범위: 1~1.2)
AST (응급) 143 (간 수치, 정상 범위: 10~40)
ALT 349 (응급) (간 수치, 정상범위: 4~10)
r-GTP 2362 (간 수치, 정상범위: 10~61)
ALKALINE PHOSPHATASE 490 (알칼리인산분해효소, 정상범위: 20~130)
진료 소견
CBD dilatation, r/o biliary malignancy
담낭이 아니었다. 담관. 듣도 보도 못한 곳에 암이 의심된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