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카타르시스

by bxd


수술 다음 날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삼성증권 앱을 열어 몇 개 종목의 차트를 확인한 일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기가 찼을 텐데 그날은 웃음이 났다.


“아부지, 고구마 그만하고 내 자산 관리할래? 아버지가 재미있어하는 거 같은데. 소질도 있고. 재밌는 거 하며 살아야지. 몸 쓰는 일 말고. 안 그려?”


아버지는 어제와 같이 어, 하고 답했다.


“고구마는 그만두고.”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대답할 수 있게 다시 질문했다.


“내 전 재산이 주식에 들어가 있거든. 많지 않지만. 그거 관리해봐. 수익 나면 용돈으로 쓰고. 그러려면 고구마 그만둬야 돼. 어뗘?”


이번에도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생각 좀 해봐.”


아버지는 다시 코를 골고 잠들었다. 나는 삶은 계란과 커피를 들고 휴게실로 나왔다. 밤새 잠을 설쳐 몸이 찌뿌둥했다. 간병은 죽어도 못하겠다 싶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데다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새벽에 겨우 잠들만하면 그때부터는 간호사가 와 잠을 깨웠다. 두 번 다시 병원에서 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간병이랄 것이 없었다. 오줌줄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소변은 해결이 되었고, 먹은 것이 없는 데다 수술 전 장을 비워서 대변도 나오지 않았다. 방귀가 나오면 그때부터 미음부터 식사를 시작할 것이고, 오늘 오후부터는 침대에 걸터앉는 연습을 할 것이고, 내일부터는 걷기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회복이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이주일 후에는 퇴원할 것이다.


병실에 돌아가니 잠에서 깬 아버지가 웬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주식방송 아니면 역사방송만 보는 아버지가 다른 걸 듣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는 침대에 누운 자세로 7080 노래를 들으며 손가락과 발가락을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좀 우스웠다.


“지금 뭐 하는 겨? 기타 연주하는 겨?”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배 앞에서 손가락을 튕기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기타 쳐본 적 있어?”

“있지.”

“언제?”

“그때는 다 쳤지.”

“나는 아부지가 일만 할 줄 아는 줄 알았는데 젊을 땐 그래도 낭만이 있었나 보네. 엄마 만날 때도 기타 쳤었어?”

“엄마 왔을 때는 막내 삼촌이 보컬 한다고 부엌에서 소리 지르고 그랬지.”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웃는 건 처음이었다. 옛이야기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제야 아버지가 좀 철이 든 것 같았다.


“어제 작은 아버지 오신 거 기억나? 30분이나 있었는데.”

“그렸어?”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가 다녀간 건 알았지만 아버지가 잠들지 못하게 말을 건 것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제 나와 나눈 대화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주변에 하는 거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네. 외삼촌도 오고 작은 아버지도 오고. 다들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어? 내가 여기저기 전화 하느라 바뻐.”


지나가듯 던진 그 말에 아버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는 클리넥스 휴지를 여러 장 뽑아 아버지의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집에서 클리넥스 휴지를 가져왔었다.


“아부지, 우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여기 억눌린 게 많은 사람일수록 많이 울어야 돼.”


나는 아버지의 가슴 부위를 몇 번 토닥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어. 우는 건 카타르시스라고. 정화라고. 그래야 쌓인 게 풀어져.”


아버지는 또다시 흑흑 소리 내며 울었다. 나는 클리넥스 네 장을 더 뽑아 아버지의 머리맡에 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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