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수술

by bxd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MTS 화면을 보고 있었다. 수술 날까지도 주식을 들여다보는 아버지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데 아버지가 웬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더니 자신의 계좌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빠, 이만큼 벌었어.”


화면에는 250여 만 원의 숫자가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1~2년 전에 500만원으로 시작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거래를 했고 최근 병원에 있으며 수익을 좀 봤다고 했다. 그 말을 표정 없는 얼굴로 해서 자랑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는 짧게 잘했네, 하고는 삶은 달걀과 커피를 들고 휴게실로 갔다. 계란을 까먹으며 아버지가 모처럼 이름을 불러줬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어야 했나 잠시 생각하다 이 정부 들어 박살 난 계좌가 떠올랐다. 주식만큼은 아버지가 나보다 나았다.


수술 시간이 임박하자 아버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외삼촌이었다.


“여기 병원인데.”

“병원이요? 어디요?”

“여기 수술실 앞인데, 아버지 이름이 안 떠 있네?”

“수술받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이모가 아침에 연락을 줘서 전화 끊자마자 달려왔지.”


외삼촌은 이모로부터 전신마취 한다는 얘기를 듣고 두 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온 것이다. 이모가 병원 이름을 잘못 알려줘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큰 수술이니 큰 병원에서 하겠거니 싶어 일단 왔다고 했다. 외삼촌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나도 아버지도 당황했다. 나는 급하게 외삼촌을 모시러 갔고 아버지는 휴게실에서 기다렸다. 외삼촌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외삼촌의 눈가가 젖어있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 아니냐.”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외삼촌은 자신의 막내 동생이 덩달아 고생하는 것이 섭섭할 법도 한데 한 번도 표현한 적 없었다. 명절은커녕 제 부모 제사 때도 얼굴 비추지 않는 아버지가 괘씸할 법도 한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왔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안부를 묻는 사이 수술실로의 이동을 도와주는 직원이 나타났다. 나는 외삼촌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 아버지와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에 도착하자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는 말에 나는 급히 아버지의 빈 머리통을 두드렸다.


“잘 자고 와.”


직원이 아버지를 데려갔고 문이 닫혔다. 드라마에서처럼 닫힌 문을 부여잡고 눈물 흘릴 정신도 없이 나는 바로 외삼촌을 만나러 갔다. 먼 길 온 외삼촌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외삼촌은 어떤 상황인지 금방 이해했다. 나는 외삼촌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외삼촌이 다녀가고 이번에는 작은 아버지가 왔다. 나는 외삼촌과 갔던 커피숍에 다시 들어갔다. 수술은 5시간 이상 걸릴 예정이며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로 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얼굴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컨디션이 좋으면 일반 병실로 오지만 큰 수술이기에 중환자실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작은 아버지는 그때까지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작은 아버지와는 또 무슨 얘길 해야 하나... 나 역시 아버지를 닮아 말수가 많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고구마 사업과 그로 인한 가족의 붕괴, 어머니의 건강 악화, 상황이 이런데도 아버지가 고구마 농사를 지으려 한다는 것과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작은 아버지는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수술은 다섯 시간 만에 끝났다.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오고 안에서 보호자를 불렀다. 나는 작은 아버지와 함께 들어갔다. 약 기운에 눈을 감았다기보다 뜨지 못하는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인기척이 들리자 아버지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아파요, 였다. 말이라기보다 옹알이에 가까웠다. 그다음 한 말은 둘째여? 였다. 작은 아버지가 형, 수고했어, 라고 했기 때문이다. 병실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작은 아버지에게 휴게실에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 아버지의 침대를 끌고 병실로 갔다.


간호사는 아버지가 잠들지 못하게 계속 말을 걸라고 했다. 수술 내내 폐가 정지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잠들어 버리면 쪼그라든 폐가 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타조알 같은 머리통을 만지며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가 입을 천천히 움직였다.


“아...파...”


목구멍에서 소리가 간신히 나왔다. 말이라기보다 잠꼬대 같았다. 나는 다시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가 무거운 눈에 힘을 주며 뜨려 했지만 이내 감겼다.


“아...파...”


고구마 농사를 짓다 다리가 찢어져도 아프다고 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발목에 주먹만 한 물혹이 생겨 제거 수술을 받은 뒤에도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비닐봉지를 몇 겹을 싸매고 고구마 밭을 뛰어다닌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여태껏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처음으로 아프다 말했다.


“아빠.”


나는 나를 보지 못하는 아빠를 보며 울었다.


“아...파...”


아빠와 아파가 번갈아 가며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말하기를 그만두고 밖으로 나와 작은 아버지에게 방문증을 건네며 아버지가 주무시면 안 되니 말을 걸어달라고 부탁하고 교대했다. 먼저 부재중 통화가 와 있는 엄마부터 전화했다. 엄마는 불안해 죽겠는데 왜 이리 연락이 안 되냐고 성을 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했다. 이후에는 동생과 고모와 외삼촌과 통화하고 막내 작은 아버지에게 수술 잘 끝났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작은 아버지와 교대했다. 작은 아버지는 복잡한 얼굴로 네가 고생이 많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다시 병실로 향했다.

아빠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말을 할 수 없는 아빠가 어, 라고 대답할 수 있게 말을 걸었다.


“아빠.”

“어...”

“아프지.”

“어...”

“많이 아프지.”

“어...”

“아플 거라고 했잖아.”

“어...”

“이렇게 아플 줄 몰랐지.”

“어...”

“그러니까 딸 말 들어야겠지.”

“어...”

“이제 딸 말 들을 거지.”

“어...”


나중에는 어, 도 힘들어했다. 안 되겠다 싶어 코 고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타조알 같은 아버지의 머리통을 때렸다. 가족에게 한없이 무심한 아버지가 다른 이에게 친절을 베풀 때 그토록 때리고 싶었던 머리통을 여러 번 갈겼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지만 이내 감겼고 코를 골았다. 그러면 다시 아버지의 머리통을 갈겼다. 병실로 돌아온 지 세 시간 정도 지나고 머리통 때리기를 멈추고 아버지를 재웠다.


소등시간이 되자 잠이 오지 않는 젊은 보호자들은 가슴팍에 방문증을 걸고 휴게실로 모였다. 누군가는 뒤늦게 식사를 했고, 유튜브를 보았으며 양치질을 했다. 몇몇은 티비 앞에 옹기종기 모여 미스터트롯을 보았다.


나아라 나아라 울 아가 울지 마라

나아라 나아라 세상에 지지 마라


이름 모를 가수인지 일반인인지가 목 놓아 노래를 불렀고 화면 속 연예인들과 관중들은 눈물을 훔쳤다. 화면 밖 사람들과 함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화. 암의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