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암의 원인

by bxd


명절을 앞두고 집에 내려왔다. 2주 만에 다시 찾은 집은 평소보다 더 어질러져 있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아버지 때문이었다. 평생 집안일이라고는 해 본 일 없는 아버지는 바닥 여기저기에 옷을 벗어놓는가 하면 제가 먹은 밥그릇도 설거지하지 않았다. 분리수거는커녕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 내다 버릴 줄도 몰랐다. 발에는 크고 작은 알갱이가 밟혔고 아버지가 주로 앉는 소파에는 아버지의 발바닥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이 버짐처럼 붙어 있었다. 아버지 퇴원 기념으로 장만한 소파였다. 깨끗이 좀 쓰라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아버지는 나를 대하는 것처럼 소파를 다루고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집 안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동안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았고 이따금 엉덩이를 들어가며 방귀를 뀌어댔다. 꼴 보기 싫었다. 평생 일만 하던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런다는 것은 알지만 하다못해 자기 팬티 정도는 개야 하는 것 아닌가.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넘쳐 있었고 옆으로 쓰레기가 담긴 대형 봉투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왜 밖에 내놓지 않고 쌓아두는 거지. 봉투 주변으로 튕겨져 나온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봉투 하나로 쓰레기를 모으다가 불가리스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입원 전에 마시던 그 날짜 지난 불가리스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부지, 불가리스 먹어? 이제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


우유와 유제품은 암 환자가 피해야 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제지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소 높아진 언성으로 말했다.


“아빠가 암에 걸린 이유는 하나여. 제때 밥 못 먹어서. 새벽에 나갈 때 네 엄마가 밥 안 차려줘서.”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남에게 세상 친절한 아버지는 나와 엄마에게 언제나 그 말투로 대했다. 강압적이고 승질을 내는 듯한 명령조로.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밥 못 먹은 것 치고는 배가 많이 나왔는데.”


마침 전화가 왔고 아버지는 전화를 받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소리가 나게 봉투에 담았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동안 그 많은 밥을 해먹인 게 대체 누군데. 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린 이유가 다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인 분석도 잘못됐고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아버지는 더 무너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흐어흐어흐어.


방문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흐느끼고 있었다.


난생처음 들어본 아버지의 흐느낌은 흡사 동물의 울음소리 같았다.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몰라 나는 어색하고 기이한 소리. 아버지는 계속 같은 소리를 내며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좀 의아했다. 아버지가 저렇게 감정을 터놓을 상대가 있었던가. 거래처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버지는 어떤 사적 관계도 맺지 않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시시하다고 생각했는지 가족뿐만 아니라 그 누구하고도 마음을 나누지 않았다. 누구보다 외로웠고 섬처럼 고립된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단했던 인간이 운다. 단단하게 스스로를 무장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여린 인간이 운다. 저 여린 사람이 저토록 단단해지기까지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을까.


밖으로 나왔다. 불가리스 3개를 들고 콩순이에게 갔다. 콩순이는 우리 집 개였다. 시골집에 당연히 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집에 항상 개를 들였다. 어떤 때는 세 마리까지 있었다. 엄마는 키우지도 못할 거 왜 자꾸 데려오느냐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우리 집 개는 콩순이가 마지막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콩순이에게는 콩돌이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목줄이 풀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콩순이도 그렇게 이 집을 떠나가길 바랐다. 목줄에 묶여 반경 1미터를 벗어나지 못하는 콩순이가 자유를 찾아 떠나길 그토록 바랐건만 콩순이는 목줄이 풀릴 때마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이 뭐가 좋다고. 밥도 제때 주지 않고 산책은커녕 만져주지도 않는데. 똥도 안 치워주는데. 집 밖을 청소하느라 왔다갔다 하고 있으면 콩순이는 흐어흐어흐어 하고 울었다. 자기한테 오라고, 나 여기 있으니 제발 함께 있어달라고 구슬프게 울어댔다. 나는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외로운 콩순이를 보면 안쓰러웠고 미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가끔씩 간식을 사 갖고 가는 일뿐이었다. 무료하게 누워있던 콩순이가 나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콩순이에게 불가리스를 주고 냄새나는 털을 오랫동안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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