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일을 강행할 만큼 컨디션이 좋았던 아버지는 며칠이 지나자 소화가 안 되기 시작했고 시술 부위에 불편감을 호소했다. 일은 거의 하지 못하게 되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즈음 배액관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에 갔고 처음으로 외과 의사를 만났다. 나는 그날 일정이 있었고, 동생도 연차를 내기 어렵다 하여 한 부장님한테 같이 가 줄 것을 부탁했다. 한 부장은 몇 년째 아버지의 일을 무보수로 도와주고 있는 아버지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했던 한 부장은 나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나는 의사에게 질문할 것들을 정리해 건넸다.
진료가 끝나고 한 부장은 수술 일자가 3월 초로 잡혔다며 이왕이면 메이저 병원에서 수술할 것을 권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아버지가 의사의 이야기에 충격을 먹은 것 같다고. 내가 그토록 이야기할 때는 듣지 않더니 의사로부터 직접 암이라는 사실을 듣고 현타가 온 모양이었다. 더욱이 전이와 재발률이 높다는 데서 아버지는 자신감을 상실한 것 같다고 했다.
그날 저녁 통화했을 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대리 진료를 받고 온 C 병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사가 젊긴 하지만 평판이 좋고 무엇보다 수술이 빨랐다. 수술은 앞으로 한 달 뒤 2월 중순으로 잡혔으며 외래 진료를 잡았으니 두 병원을 비교해 보고 좀 더 마음이 기우는 쪽을 선택하자고 제안했다. 마침 그날은 동생의 둘째 딸의 돌잔치 날이기도 했다. 어차피 올라와야 하니 그 김에 병원진료를 보자는 말로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게 설득할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웬일로 그러겠다고 했다. 내친김에 A 병원과 B 병원도 가볼 것을 권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그 부분에 대해서 어디든 똑같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이전과 달리 목소리에 힘이 없었을 뿐이다.
“삼촌하고 고모한테 얘기해.”
아버지가 또다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배에 힘을 주지 않고 소리에 호흡을 싣지 않는 매가리 없는 음성이 신경을 건드렸다. 아버지답지 못하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독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고작 이따위 일에 무너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목표가 생기면 전력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나나 가족이나 주변의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서라도 성공을 위해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 힘으로 싸우면 되는 거였다. 아버지가 항상 강조했던 정신력으로 버티면 되는 거였다. 나는 아버지답지 않게 풀이 죽은 아버지를 불렀다.
“아부지, 내 말 잘 들어. 앞으로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아부지가 원든 원치 않든 이 항해는 시작됐어. 아부지는 이 배의 선장이야. 아부지가 쓰러지면 이 배는 끝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쓰러지면 안 돼, 알았지? 그리고 나는 이 배의 항해사야. 앞으로 내가 이 배를 진두지휘 할 거야. 아부지는 내 말만 믿고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 알았지?”
아버지가 텀을 두고 여전히 기운 없는 목소리로 어, 라고 답했다. 전화기를 잡고 있는 팔이 떨려왔다. 나는 나머지 한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의 손목을 잡았다.
“오늘 병원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고 잘 자, 사랑해.”
그날 이후 아버지에게 매일 전화했고 마지막에는 같은 말을 했다. 잘 자, 사랑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언젠가 알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