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자기결정권

by bxd


다음 날 아버지는 퇴원했다. 원래대로라면 스텐트가 제대로 자리 잡았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의사는 시술이 잘 된 것 같으니 일단 퇴원하고 다음 주 외과 진료날에 맞춰 배액관을 제거하자고 했다. 그날 아버지는 집으로 운전해서 갔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A, B, C 병원을 예약했다. 지금의 병원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크로스체크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선택하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생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 생각했다.


가장 빨리 예약이 잡힌 곳은 C였고 대리진료가 가능한 유일한 곳이었다. 집에서 2시간 거리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 교통비가 절약되었고 동생의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라는 장점이 있었다. 아버지가 받게 될 수술의 이름은 PPPD(유문부 보존 췌십이지장 절제술 또는 췌두부십이지장 절제술)였다. 병변이 있는 담관을 포함해 십이지장, 담낭, 췌장의 머리 부분을 근치적 절제하여 남은 담관과 소장을 연결하는 큰 수술이었다. 수술 후 일상 회복까지는 반년 정도 소요되며 이후 복막이 약해지기 때문에 배에 압력이 가해지면 탈장이 일어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 이제 일하지 못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번에도 모두의 예상을 깼다. 11일 만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그 길로 공장으로 가 일을 시작했다. 옆구리에 배액관과 철사 같은 줄 2개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음에도 고구마를 들고 날랐다. 일을 향한 집념이라고 해야 할지... 그 장면을 목격한 모두가 놀랐다. 전화로 그 사실을 전하며 엄마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냐고 코웃음 쳤지만 내심 기뻐 보였다. 그동안 엄마는 병원에 있는 아버지가 걱정되어도 고구마 일 때문에 병원 한 번도 오지 못했다. 나는 엄마에게 일 하시라 그래. 나중에 수술받으면 하고 싶어도 못해, 하고 말했다.


엄마와 통화가 끝난 후에는 아버지에게 전화해 병원 세 곳을 예약했으니 서울에 올라오라고 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지금 그거 신경 쓸 시간 없어.”


일 때문에 병원에 올 시간이 없다는 그 말이 대단히 오만하게 들렸고 버지가 여전히 정신 못 차렸다고 생각했다.


“아부지, 의사는 신이 아니야. 수술할 의사 아직 만나지도 못했잖아.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한 사람한테 운명을 맡겨. 이 의사 저 의사 만나보고 믿을 만하다 싶은 사람한테 맡겨야지. 그게 자기결정권이야.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하는 거.”

“아빠는 한 가지만 집중해. 여지껏 그렇게 살아왔어.”

아버지의 레퍼토리다. 그 말을 할 때면 아버지는 잔뜩 심술이 난 얼굴로 미간에 인상을 쓰며 눈을 흘겼다. 내가 아버지에게 반발할 때 늘상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면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동생과 달라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는 엄마와 달라서 마냥 순종하지 않는다.


“걱정할까봐 얘기 안 했는데 아부지는 정신 좀 차려야겠다. 이거 그냥 암 아니야. 다른 암하고 달라. 재발률도 높고 전이도 빨라. 수술도 전신마취해야 하고 4시간에서 6시간 이상 걸리는 어려운 수술이야. 인간의 몸이 얼마나 복잡해. 순간순간 판단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겠어. 조금이라도 경험 많고 평판 좋은 사람한테 맡겨야 하지 않겠어?”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있지 않을 것이다. 세 문장이 넘어가면 딴생각을 하니까.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번만큼은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한 번 더 불렀다.


“다시 전화할 테니까 더 고민해봐.”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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