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문
안녕하세요, 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벌써 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 되어 갑니다. 학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학교 주변을 맴돈다면 단 한 명의 아는 얼굴도 마주칠 수 없겠지요. 사장님도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자주 갔었는데도, 원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미안하신 듯 멋쩍게 웃으셨잖아요.
졸업하면 학교 쪽으로는 재채기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막상 졸업하고 나니 종종 생각이 납니다. 공강 시간에 벤치에 앉아 책을 보던 시간,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콜드브루로 몰래 바꿔 주시던 사장님의 다정함,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멈추지 않았던 삶에 관한 이야기, 이상과 꿈으로 반짝였던 단호한 목소리들.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지난 후에야 소중함을 아는 존재인가 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저는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자각하려고 합니다.
사장님 카페가 사실 '정력 카페'로 불렸던 것을 아시나요? 물론 그 이름은 제가 작명한 것입니다. 사장님도 아마 껄껄 웃으시며 동의하실 겁니다. 사장님 카페에는 ‘정력치노'라는 커피 메뉴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갔을 때는 눈을 의심했고, 두 번째 갔을 때도 차마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학교 골목길에 있는 작은 카페에 '정력치노'라는 메뉴가 있어."
그 당시 교재 중이었던 애인을 데리고 간 세 번째 방문에서 ‘정력치노’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넉살 좋았던 전 애인이 '정력치노'의 정체를 대신 물어봐 주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저라면 첫 방문 때부터 메뉴판을 보자마자 민망함 따위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정력치노가 뭐예요”라고 당당하게 물어보고 곧장 주문했을 겁니다. 그땐 지금의 저보다 훨씬 수줍고 조심스러웠으며, 겁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겁이 많지만, 무시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력치노'의 정체는 정력에 좋은 한약재를 넣어 만든 카푸치노였습니다. 조금은 부끄러워 까르륵 웃는 저희와 다르게 사장님께서는 생각 외로 무덤덤하셨습니다. '정력치노'를 홀짝거리는 애인을 보며 "어때, 힘이 나는 것 같아?"라고 장난스럽게 묻기도 하였지요.
단순히 ‘정력치노’가 인상 깊어서 사장님 카페를 마음 한편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4년 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별나고 애틋한 시간 때문이지요.
6월은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었고, 기숙사에 살았던 저는 공부를 하기 위해 조용한 카페를 찾아 떠났습니다.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주말의 학교는 조용했습니다. 평일의 북적거림을 다시 맞이하기 위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듯했지요. 두꺼운 전공 책과 프린트물을 잔뜩 들고 나왔습니다. 처음엔 사장님 카페가 아닌 새로 알게 된 넓은 카페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카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찬송가 소리에 곧바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찬송가를 들으면서 시험공부를 할 수는 없으니깐요. 그리고 그 길목에서 도서관을 갈까, 다른 카페를 찾아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만약 그때 도서관을 갔다면 지금 떠올리는 기억과 쓰고 있는 글 모두 없었겠지요. 순간의 사소한 결정이 훗날 크게 작용하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렵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정말 가치 있는 결정’이 무엇인지 신중해집니다. 여기서 ‘정말’은 필수 부사어입니다. ‘가치 있는 결정’이 아님에도 자신을 속이며 합리화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말입니다.
도서관에 가지 않고 사장님 카페로 간 저는 자리에 앉자마자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의자와 테이블의 높이, 차분하게 들려오는 뉴에이지, 아무도 없는 공간, 모두 완벽했습니다. 공부하기 위해 카페에 가는 경우, 테이블과 의자의 높이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되지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아메리카노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제 아메리카노를 콜드브루로 바꿔 버리셨지요. 자신만 먹으려고 아껴 놓은 거라며, 투명한 물병에 한약재처럼 담겨 있는 콜드브루를 냉장고에서 꺼내 오셨습니다. 커피보다 훨씬 시커먼 색에 가정용 물병에 담겨 나오는 정체 모를 액체는 한방 냄새가 그득할 것 같았고, 잠시 의심을 했으나 사장님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저는 콜드브루라는 것을 처음 마셔 보았습니다. 아메리카노보다 깔끔하고 진한 맛에 살짝 초콜릿 향도 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맛이 어떠냐고 물으셨고, 저는 “초콜릿 맛이 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무 의자와 나무 테이블, 그리고 작고 귀여운 다육이들과 아무도 읽지 않는다며 서운해하셨던 책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왠지 오늘은 성공적으로 시험공부를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예감은 역시나 빗나갔습니다.
시험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사장님 친구분이 커다란 수박 한 덩이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잇달아 두 명의 친구분들이 더 오셨지요. 조금씩 소란스러워지는 분위기에, ‘아, 오늘 시험공부는 틀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짐을 챙기려던 찰나,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빵과 수박을 주셨습니다.
“먹으면서 해요.”
저는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페는 곧 시끌벅적해졌고 이미 틀려버린 시험공부를 붙들려고 애쓰고 있을 때, 한 아저씨께서 말을 거셨습니다.
“학생, 공부 안 하는 거 다 알아. 이리 와서 수박이나 먹어”
공부하고 있던 ‘척’을 들켜버리니 부끄러워 멋쩍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들도 “빨리 와”라고 재촉하셨습니다. 그 상황이 쑥스러웠던 저는 마지못해 일어난 것처럼 뭉그적거리며 50대 후반의 아저씨 4명이 모여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아저씨들은 수박을 제 쪽으로 밀어주셨습니다. ‘몇 학년이냐’, ‘전공은 무엇이냐’, ‘몇 살이냐’ 등 당연히 저에 관해 이것저것 물으시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불편한 간섭과 훈계도 당연히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들은 예상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래 부릅시다.”
그리고는 클리어 파일을 주시며, 아는 노래가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클리어 파일에는 손수 프린트한 것처럼 보이는 악보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물론 그 파일에는 제가 아는 노래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과 50대 후반의 아저씨 사이에 노래의 공통분모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가게 구석에 있던 통기타를 가지고 오셨지요. 그 통기타를 누가 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누군가가 제대로 조율을 못 하고 있으니 “야, 빨리 안 하냐.”, “너 기타 칠 수 있는 거 맞아?”라며 다들 입 모아 구박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강의실에서 매일 마주치는 왁자지껄한 남학생들이 아저씨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이가 무색했습니다.
모르겠어도 1절 듣고 따라 부르라고 하셨고 노래는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손뼉 치며 아저씨들을 구경했습니다. 점잖고 다정하게만 보이셨던 사장님께서 노래에 심취해 눈을 감고 목청껏 부르시는 모습을 보니 낯설고 신선했습니다.
한 곡이 끝나고 누구 먼저랄 것 없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이건 알 거라며 악보를 펼쳐 노래 하나를 제안해주셨습니다. 다른 아저씨는 핸드폰에서 한 성악가가 부르는 영상을 찾아 들려주셨습니다. 그 노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습니다. 멜로디도 아름다웠지만, 가사는 더 아름다웠습니다.
가끔 두려워져 / 지난 밤 꿈처럼 / 사라질까 기도해 / 매일 너를 보고 /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 사랑은 가득한 걸 /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 살아가는 이유 / 꿈을 꾸는 이유 / 모두가 너라는 걸 / 네가 있는 세상 / 살아가는 동안 /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진실한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이 가사를 적을 수 있겠지요. 카페에 나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이 노래를 반복 재생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나보다 더 아껴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이 노래를 불러주며 프러포즈를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노래를 불러준다면 어떤 부귀영화보다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어디선가 들어본 멜로디에 알 것 같다고 하였고, 노래는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조금 따라 부르는 것을 보시더니, 아저씨들은 자꾸만 “한 번 더!”를 외치셨고, 그 뒤로 서너 번은 더 반복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잊은 채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낯선 아저씨들과 사적인 대화 하나 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으니, ‘이게 꿈인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습니다. 기분 좋은 어색함이었습니다. ‘세대 차이’, ‘세대 갈등’이라는 단어의 존재가 의심될 정도로 아름다운 화합의 장이었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진정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만 모여있었습니다.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귀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몇 곡 더 불렀고, 친구분들은 사장님과 저녁을 약속하며 가게를 나가셨습니다. 왁자지껄했던 가게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고, 밖은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은 틀려버린 시험공부들의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청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다가 나온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저도 사장님 나이가 된 후에도, 아니 사장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더더욱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큰 소리로 웃고 유치한 장난 때문에 티격태격하며, 그렇게 나이와 무관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과 친구분들은 정말 젊게 살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젊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요. “
저는 그 말을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잊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많은 사람이 제 곁을 머물다가 스쳐 지나가고, 다시 머무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 말을 떠올리는 시간은 늘어갑니다. 나이가 의미하는 바가 클까요? 나이에 걸맞은 틀은 누가 정한 걸까요? 유치한 장난을 치고, 큰 소리로 웃고, 꿈을 그리며 사는 시간은 기한이 있나요? 그런데 20대는 10대에게, 30대는 20대에게, 40대는 30대에게... 왜 자신의 후회를 전가하며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요, 아직 젊다고, 싱그럽다고 말하는 걸까요. 뭐든 해볼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가 맞습니다.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깊게 느낍니다. 시간이 소중해집니다. 하지만 인생이 무한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100세 시대라고 해서, 정말 100세를 온전히 누릴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나이라는 올가미에 자신을 스스로 묶어 놓고 숨을 헐떡거립니다. 괴로워하면서도, 괴로워하는 자신이 비참해 보여, 함께 그 올가미를 쓰기를 종용합니다. 가끔은 모두가 쓰는 올가미를 저도 한 개쯤은 쓰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중한 것을 놓치거나 아예 깨닫지도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이방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저는 필사적으로 나이의 올가미를 외면하고자 합니다.
'젊음을 노력한다.'라는 사장님의 말씀은 제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말도 저를 떠나려고 할 때가 있겠지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욱 ‘잘’ 살고자 합니다. 저는 아직 서툴고 어리석습니다. 모나고 옹졸한 마음을 볼 때마다 수치스럽고, 아직 여린 살들이 남아있는 마음을 발견할 때면 겁이 납니다. 그 여린 살들이 굳은살이 되기 위해 찢기고 피 흘릴 인고의 순간들이 무섭습니다. 피 흘리는 살들이 굳은살이 되지 못하고 썩어 버린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무섭지만 그 살들이 썩지 않고 굳은살이 될 수 있도록 저는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사장님께 힘겨웠던 속마음을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짐짓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두려웠습니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가 '어쩔 수 없지'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휴짓조각처럼 구겨지는 상황을 목격해왔습니다. ‘어리다’라는 말로, ‘다 그런 것이다’라는 말로 입마개를 씌웠습니다. 20대 초반은 성인이 됐다는 이유로 어른의 몫을 해내기를 요구당하지만,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세운 의견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배제당합니다. 사장님도 제가 만났던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속 이야기를 꺼낸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사장님은 예상과 다르게 잠자코 들어주셨습니다. 그때 사장님의 얼굴에는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너무 일찍 터득해버린 어린 소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죠.
"학생 탓이 아니에요."
‘어른’이라는 존재는 저에겐 수년 전부터 믿을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듣는 이 따뜻한 말은 낯설고 간절했습니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은연중에 ‘어쩌면 내가 정말 이상한 것일지도 몰라’라며 의기소침해 있던 저에게 사장님의 말씀은 큰 안도가 되었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담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자신의 두 아들이 직장인이 된 이후부터는 최대한 존대한다고 하셨습니다. 한두 달에 한 번은 같은 책으로 온 가족이 대화를 나눈다고 하셨지요. 요가 선생님인 아내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합니다. 사랑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눈동자와 손짓에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존중'이라는 체(體) 향이 은은히 풍겨 나오는 분이셨습니다.
좋고 나쁨과 관계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그날의 기분뿐만 아니라 인생을 좌지우지할 큰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무해한 사람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유해한 사람은 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가 주는 파장이 거대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사장님의 프로필 사진을 가끔 봅니다. 건강하신 모습에 기쁩니다.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보니 여전히 책을 사랑하시고 몸과 마음을 가꾸며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찾아뵐지는 모르겠습니다. 좋은 기억은 조금도 망가트리고 싶지 않아 이대로 묻어두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젠가 학교에 가게 된다면 모른 척 커피 한잔하러 들릴 수도 있겠네요. 그때도 콜드브루로 바꿔 주시려나요?
‘선한 영향력’을 알게 해 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삶이 퍽퍽할 때면 그날의 싱그러움에 잠시 기대려고 합니다. 언제나, 무탈히, 건강하시길 소망합니다.
- 이슬아 작가의 말을 빌려 픽션도 논픽션도 아닌 '응픽션'인 서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