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건 활시위
덕업일치: 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나는 진정한 덕업일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일을 좋아할 수 없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다 보니 취미와 동경 사이 어느 지점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감각을 이긴 감성으로, 그렇게 나는 문화예술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다. 일로써 말이다.
영화배우도 볼 수 있어? 부럽다.
공연도 자주 볼 수 있겠네? 좋겠다.
문화예술 업계 종사자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나는 경계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나는 그걸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도 직접 만났어.
공연도 자주 보고 무대도 직접 볼 수 있어.
누군가는 부러움으로 포장한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래도 넌 재미있는 일 하잖아.
거의 노는 거 아니야?
문화예술이라는 영역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이 영역에서 일하는 건 그다지 고단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다는 걸 내포하고 있는 말이자, 칼이었다.
음, 재미있는 일을 하는 건 맞는데 노는 건 아니란다!
그 칼은 무디다 못해 내 앞에선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주임님을 만났다. 일로 만났지만, 둘이 만난 건 처음이었다. 내 개인 SNS를 3개월간 열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궁금해졌다고 했다.
주임님이 바라는 인생의 방향성이 참 궁금해요.
내 가치관이 가리키는 길, 내 눈이 바라보는 시선을 궁금해하는 게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누군가 내 삶의 목표와 방향성 같은 걸 묻는다면 항상 일을 1순위로 말하곤 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도 직장생활은 인생에서 매우 큰 부분이다. 우리는 평일(심지어 나는 주말까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결국 일하는 시간도 내 인생의 일부분인데,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직장생활의 행복도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좇는 내 삶에서, 일은 더욱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덕과 업이 일치하여 행복을 깨우치니, 내 일이 곧 삶이 되었다. 사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운을 띄울 수 있는 것 만으로 행복했다. 진실된 눈빛, 당찬 목소리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결국, 좋아하는 분야에서 잘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하는 게 내가 바라는 인생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내가 바라는 행복의 조건이었다.
일을 정말 사랑하는 게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 일상과 일의 큰 경계 없이 모두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한다. 누군가는 부러움으로 포장한 칼을 들이밀었지만, 더욱 많은 누군가는 부러움을 건 활을 쏘았다. 화살은 인정의 과녁에 거짓 없이 명중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그 일도 싫어질 거야.
이 말도 무딘 칼이 되어 내 앞에선 효력을 잃을 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니, 제 일 만큼은 싫어할 수가 없던 걸요!
당당한 활시위에 화살이 이번에도 힘차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