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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표 Aug 22. 2024

영원 105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여름의 또 다른 이름은 영원이라 불러요

영원한 건 없다.

삶도 그렇다.


우리 외할머니는 아들, 딸뿐만 아니라 손주들까지 총 7명을 키우셨다. 당신은 그렇게 작고 가냘픈데 어떻게 우리를 다 키우셨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손주들에게 단 한 번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착한 외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조용히 우리를 배려해 주셨다. 편안히 마지막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려주셨다.


몇 년 전부터 정신이 시름시름 아파지셨다. 엄마도 우리 세 자매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수백 번 알려드린 우리 집 고양이 덕봉이를 보며 야옹이 예쁘다 하셨다. 그 작고 주름진 손으로 야옹이를 쓰다듬었고, 야옹이는 그런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단 한 번을 경계하지 않았다. 절대 낯설고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리는 음식이 없으셨다. 연세가 드셔도 뭐든 너무 잘 드시는 덕에 걱정이 덜 됐다. 숟가락을 옳게 쥘 힘조차 없었지만 딸이 떠먹여 주는 밥을 싹싹 비우셨다. 그런 당신이 곡기를 끊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나마 딸이 떠먹여 주어 다시 드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던 찰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외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신 게 기억난다. 외갓집을 드나들던 많은 사람들 자꾸만 우는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를 위로하는 사람들 모두 실감 나지 않았다. 비로소 아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셨다. 살갗으로 느껴지는 죽음은 처음이었다. 내 가족이 죽는 일,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슬픈 감정이 이제야 실감 난다.


외할머니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병원에 계실 것만 같고 언제든 찾아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여름의 영원 105호, 영원할 줄만 알았던 당신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영원의 영원의 영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삶에 있어 소중한 존재의 기억만은

영원하길 염원하고 또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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