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나도 불러줄래?
얼마 전 정말 반가운 친구를 만났는데 15년 만이었다. 그 친구는 결이 다른 모범생이었고 그냥 쳐다보면 웃음이 나오는 그런 친구였다.
'세계로 뻗는 한국인이 되자'를 교훈으로 가진 학교를 나온 친구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외치는 회사에서 20년간 회사와 사장님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제 것인 양 달려오다 문득 다르게 살기로 결심을 했단다.
참으로 긴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움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시간이 궁금하면서 88일간 출장이 아닌 온전한 여행의 시작을 계획했고 그 시작은 그녀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했다.
좋은 학교, 대기업, 안정적인 결혼생활로 기억된 채로 그간의 있었던 이야기보따리 속에서 수많은 감성들이 쏟아져 나왔다.
88일간 찐 여행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여행의 자취에서 사진을 찍고 그때의 감정을 글로 썼다고 했다. 순간 '멋지다. 책으로 만들어도 될 거 같아'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나 보다.
친구의 여행 산문집 <피렌체. 당신이 날 불렀죠>은 이미 출판되어있었다.
결혼 , 출산, 육아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사치라고만 생각하는 대한민국 엄마들이 한 번쯤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여행지의 소소한 사진과 글들은 코로나-19로 하늘문이 닫혔고 외출조차 조심스러웠던 날들이어서인지 더욱 가슴을 몽글몽글 거리게 했다.
친구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워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그곳에서의 삶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남편이 있었다. 90일간 그녀의 부재를 견디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카메라와 노트북을 선물하고 그녀의 삶을 위해 전적으로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해 준 남편은 대체 어떤 남편일까? 건강과 행운만을 빌어주는 남편이 어쩌면 더 멋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고호 미술관 앞 사거리. <small talk> 카페에 앉아 앞 뒤로 아이를 태워 자전거로 출근하는 엄마들을 지켜보며 매일 새로 시작되는 아침을 맞는 것도 행운이라는 말에 토를 달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날 그녀의 매 순간 성실했던 출근 시절을 떠올리며 커피를 내리는 소리와 크로와상의 고소한 빵 냄새로 실내를 채우는 조용함이 창밖의 분주함과 묘하게 어우러짐이 느껴졌다.
그녀가 좋아했던 곳을 담은 사진은 로마거리에 간판 없는 작은 채소 가게. 풍경을 만드는 아르노강과 다리들. 한가로운 보볼리 정원과 피티 궁전. 보물창고 우피치 미술관의 소박함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배우는 드로잉을 피렌체 학원에서 배울 생각을 하는 그녀는 역시 결이 달랐다.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 타보기> 이벤트에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을 연상하게 했던 건 그녀의 계획된 의도였을까? 심히 질투가 났다.
유럽은 몽환적인 특별함이 있다. 흠뻑 취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긴 통화를 하며 빈집에 있을 아이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자신은 어떤 엄마이길래 이곳에 있는 걸까? 아이에게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함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해.'라고 나지막이 읊으며 언제나 아이 편이 돼주기로 약속했다고.
88일의 여행 중 내내 외로웠고 고독했지만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방해받지 않고 은 일하는 깊은 맛을 알았던 친구. 은일하는 깊은 맛. 너무나 시적인 표현이지 않니? 또 심히 질투가 나네......
하지만 기분 좋은 질투이다. 너무나 멋있는 내 친구.
친구는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들과 메모를 정리하며 그 특별한 가치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그녀의 화양연화가 그때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들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난 이 책을 보고 앞으로 여행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간 참 많은 곳을 오랜 기간 동안 머물렀는데 그 기억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엄마인 우리들이 일상에 지쳐서 나를 소홀히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새로운 삶에 과감히 도전하고 그 도전에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으면 그래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