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

잡기술은 늘고, 하고 싶은 건 많고, 억지로는 싫어서

by By Grace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눈이 떠졌다. 미라클 모닝 중도 아니고 전 날 알람을 설정한 것도 아니다. 그냥 스스로. 저절로 눈이 떠진 거뿐.

어제 일정은 새벽부터 빡빡했고 하루종일 굶다 첫끼를 오후 6시에 허겁지겁 먹으면서 이게 맞나……? 싶다가도 바쁜 걸 감사해야 한다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해야 할 일이 더미처럼 쌓이면 쌓일수록 상대적으로 게으름을 피울 때가 있다.

눈감기 전 넥플리스. 웨이브를 번갈아 틀어놓고 정주행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 어슴프레 저녁노을을 보며 스스로 한심해한다. ‘내일 어떡하지……?‘ 슬쩍 걱정도 하는 걸 보면

역시 100% 내려놓지는 못하겠나 보다. 그래도 이 지경이 그리 오래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머릿속으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곧 있을 중간고사 성격심리학 강의안을 출력했다.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지랄 맞은 나의 근성 때문이다.

완벽한 성격도 아니면서 대충은 싫어서 ‘~에 근거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자꾸 공부할 게 는다. 사회서비스업을 하려니 사회복지학을 , 고양이 같은 고객을 상대하려니 심리학을,

이러다 대학원을 간다고 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아는 대표가 투자를 받다 보니 투자자들이 회계학을 공부하라는 권유를 받았다며 진심으로 대학원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공부는 이제 그만해도 될 나이라고 핀잔을 주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웃기긴 하다.


출력하는 동안 토론과제를 3개를 제출했고, 2배속 강의를 들으며 정리를 마치고 나니 날이 밝았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에 따뜻한 온수로 머리를 감다 불현듯 ‘좋은 어른의 일기‘라는 직관적 문장이 떠오른 건 늘 아기, 산모, 보호자 외 관계인 들과 어울리는 나의 직업에서 느끼는 감정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때문일까? 드라마 <아저씨>에서이선균배우가 아이유에게 “좋은 어른이 못돼서 미안하다”라고 했던 대사였나? 요즘 그 말이 자주 박히는 건 나의 고객이 아기와 엄마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정형화되고 있는 내가 불편하고 지루하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말과 글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지침서가 돼버려 읽다 보니 지치고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솔직한 글을 쓰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반면 매일 아프고 짠하고 애틋한 나의 뮤즈들을 만나 이것들을 기록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린 그림을 움직이는 배경으로 클래식 콘서트를 기획하며 바쁜 날을 보내고 있어

나의 열정적이고 본능적인 날것을 끄적이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다.

지침서는 잠시 보류.

그냥 담백한 일기를 써보겠노라 다시 도전해 본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