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한 날 똥을 밟으면......
퇴근 무렵. 동종 비즈니스를 하는 친한 대표한테 전화가 왔다. 평소 차분하고 조곤조곤 말하는 타입으로 좀처럼 흥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전화를 받자마자 숨을 누르다 내뱉는 소리에 뭔 일인가 싶었는데 대뜸,
“대표님! 산모와 싸워 본 적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질문 자체가 어이없기도 해서 피식 웃음소리로 답을 했다.
”에헤이! 어디 우리가 산모랑 싸운다는 표현이 맞기나 합니까. 무슨 일인데요?”
“저 지금 산모랑 무지 싸우고 싶은데요……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컴플레인을 거는데… 아기 수유법이 남자랑 여자랑 다릅니까?”
“응. 다르죠...” 질문을 받자마자 바로 답을 해줬다.
“다르긴 뭐가 다릅니까…. 다 똑같지….. “
직원들에게 교육을 하다 보면 대표의 생각대로 전달되게 마련이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대표가 다르다고 교육시킬 수 있을까?
“저희 관리사한테 뭐라 뭐라 쏴 붙이고 응? 기본도 모르면서 무슨 관리를 하냐고 … 퍼부었다는 거예요. 그분 일 잘하는 분이시거든요.”
얼마나 화가 났으면 숨도 안 돌리고 이야기하는 게 마치 푸드덕 거리는 어미 닭 같아서 웃음이 나는 걸 참았다.
“아무튼. 그래서요……? “
“어휴 정말 이 산모한테 그냥 우리 못하겠다 말하고 싶은데, 대표님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라며 내 의견이 듣고 싶다고 했다.
“안 한다. 못한다는 절대 안 돼요. 우리가 고객을 거부하는 게 되잖아.”
“우린 당장 바꿔 줄 사람도 없고 다른 곳 알아보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한 시간 가까이가 되어서야 끊었다.
일의 특성상 20대부터 40대까지 출산한 여성부터 배우자, 조부모님까지 꽤 넓은 타깃들을 상대하게 된다.
업무역량을 얼마만큼 키웠느냐에 따라 내공이 쌓인다. 그냥 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내뱉는 말투와 행동을 하다가는 언제 어디서 철퇴를 맞을지 모른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센스 있게 하면 될 것을 그 센스가 참 어렵기도 하고 왜 센스 있게 해야 하는지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많이 들어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도 자꾸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크게 들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생각이 나면서 조급해진다. 빨리 말 안 하지 않으면 까먹고 놓칠까 봐 상대방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차 없이 끊어재끼는 주책도 서슴지 않는다. 금방 후회할 거면서.... 불쌍한 중년이다. 우리는......
돈 좀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대신 돈을 벌게 해 주셔서 감사.
진상고객 받지 않게 해 주세요 대신 고객이 생겨 감사.
일이 많아 힘들다 불평 대신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
잘난척하는 직원 놈이 날 보고 늘 이런 주문을 외우면서 살라고 충고를 하길래 끄덕거리며
"그렇지 감사하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감사소리를 뱉고 사는 게 맞지....... 가 아니고 야!! 이 시키야. 넌 그러고 사냐......? 승질나 죽겠는데 안 나는 척 주문 외우는 게 되냐?"
"난 자기 전에, 일어나자마자 매사 그렇게 해요. 요즘 들어 더 많이."
나원. 내보기에는 일처리 할 때 보면 지랄 맞은 건 매한가지이더구먼. 솔직하지 못한 놈.
2~3일이 지나 산모와는 어떻게 마무리가 됐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잘 해결이 됐는지 궁금해서요."
"이맘때쯤에 한 번씩 꼭 이렇네요. 작년엔 미친년 소리 듣고 올해는 씨 XX 소리 듣고...."
"아이고야... 환장한다. 자기야 내가 위로해 줄게 후딱 흘려보내라. 진짜 별소리를 다 듣네요. 어쩌면 좋아."
오만가지 탄식이 새어 나와도 안타까워 속이 상하는데 그녀는 시원하게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었다.
"제가 먼저 똥 밟고 갔으니 대표님은 꽃길로 걸어오세요!"
해피엔딩으로 승화시킨 우리는 불쌍한 중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