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님!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해드릴라니까...... "
복자는 텅 빈 냉장고를 보며 주혜가 빨리 나와 장을 봐달라는 듯이 일부러 방에 있는 주혜가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을 한 후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가지각색 젖병과 먹다 남은 음식이 들러붙은 냄비가 한데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도무지 신생아를 출산한 여느 집과는 달라서 저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방문을 열고 나온 주혜는 B에게 억지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오빠가 떡국을 먹고 싶대서 냉동실에 떡 사놨거든요? 떡국 해주시면 돼요. "
"떡국이요? 그럼 고기도 필요하고... 양념들은 어디에 있나요? 아까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데. "
"사실 제가 임신성 당뇨여서 의사가 식단관리를 해야 한 대요. 그래서 기본양념이 없어요. 냉장고에 있는 맛간장으로 최소한의 간만 해주시면 돼요."
"파, 마늘도 넣지 말고 간장만 넣으라고요?"
주혜는 동그랗게 눈을 뜬 B에게 자신의 확고함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똑같이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 네. 간장으로만요."
커튼이 걸려있지 않은 거실은 여전히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바닥에 아기가 누워있는 게 마치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처럼 편안해 보였다. 바다 위로 통통배가 지나가고 주방에서 요리하는 B가 분주히 움직이는 게 얼핏 따뜻한 분위기로 보이지만 아일랜드 식탁 끝 접이식 테이블 위에 단무지를 담은 접시와 수저세트를 놓으며 B가 투덜거렸다.
"고기 없는 떡국에 파, 마늘도 없이 간장만 넣으면 뭔 맛으로 먹는다는 건지 암만 식단 조절인가 뭔가 한다지만... 허이고 참말로. 나도 모르겠다. 지가 안 사주는걸 뭐......"
잠시 후 주혜와 철수가 나란히 방에서 나와 식탁에 마주 앉자 B는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이 예의 상냥함이 어색한 웃음으로 철수 앞에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산모님이 남편분 떡국 드시고 싶다 하셔서 끓였봤네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
"근데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산모님이 워낙 간을 하지 말라고 하셔서...... 양념도 없고 그냥 맛간장만 넣는데..."
"아. 진짜 괜찮아요. 저도 진짜 싱겁게 먹으니깐 정말 신경안 쓰셔도 돼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주혜는 두 사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그저 앞에 앉은 구경꾼들에게 보여주는 말장난 같은 우스꽝스러운 만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를 만난 건 선릉 근처 칵테일 바에서다. 서울로 올라와 단순 사무일을 보고 있지만 가끔 술을 마시고 대화상대를 찾는 손님을 위해 칵테일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오빠는 언젠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 때문에. 사실 난 자주 찾아오는 귀신들 때문에 잠 한숨 못 잘 때가 많다. 그럴수록 기도에 매달린다. 상대방을 마주할 때면 그 사람들이 어떤지 느낄 수 있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빠는 나의 상상력을 칭찬하곤 했다. 상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B가 퇴근하고 찾아온 저녁이 되자 주혜는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그녀가 훑고 간 공간 중 식탁 겸 테이블이 위에 먹다 남은 비스킷, 화장품, 성경책 등 잡다한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주혜는 그 북새통에 간신히 공간을 내어 성경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소리 내어 읽었다.
"시편 자녀를 위한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