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하여......
상반기 지원사업이 쏟아지자 종일 비즈니스, 마케팅, 블랜딩에 관한 책과 사업계획서에 둘러싸여 머릿속은 과부하로 터지기 직전 (압력밥솥 추처럼) 정신없이 흔들거렸다. 분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간절함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한 변화. 완벽한 계획서를 위한 대본 같은 느낌에 진정성을 불어넣긴 해야겠고 결정적 한방이 없어 며칠을 멍 때리다 이 환경을 당장 바꾸고 싶은 충동에 펼쳐진 책들을 모두 덮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늘 먹던 편의점 도시락 말고 집밥을 먹기 위해 본가를 가는 발걸음으로......
출입구 쪽에 반납한 책을 정리하는 학생을 보다 삐죽이 나와있는 표지에 시선이 꽂혔다.
퍼를 두른 롱코트에 클로슈 모자를 쓴 동양여성인 거 같은데 프랑스 여배우의 분위기를 내다니. 누구지?
그녀, 불꽃같은 생애를 그리다. 나. 혜. 석.
며칠을 나혜석(1896~1948)이란 인물에 빠져 그녀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이유 없이 '취향'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녀를 두고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선각자,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신여성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이유로 관심이 갖던 건 아니었고 우연히 그녀의 글 중 자신의 임신, 출산, 육아 경험을 너무 솔직하게 표현해서 사회에 지탄을 받았던 짧은 내용이 충격적이면서도 격한 공감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점점 궁금해진 출발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표현한 <모가 된 감상기>는 여성의 산후 우울증을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것이 당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지만 마음의 병을 갖고 있던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산후우울증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경미한 산전 우울증을 겪기도 했으니까. 친구들은 한참 커리어를 쌓아 핵심 자리에 앉아 워킹우먼으로 잘 나가고 있었고 남편은 새로 시작한 사업 때문에 나한테 배려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다들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뒷걸음질을. 그것도 배가 불러 '뒤뚱거리는 오리걸음으로'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한없이 무너졌던 때로 기억하고 있다.
모성이란 걸 증명해야 하는 걸로 아는 산모와 보호자를 만날 때가 있다. 아기와 엄마가 같이 행복하는 걸 배제하고 일방적인 엄마의 희생 = 모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군수의 딸로 태어나 당시 여성이 받기 힘든 고등교육을 (진명여고를 최우수로 졸업)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 가 서양 미술(유화)을 전공했다는 건 지금도 쉽게 자신의 진로를 맘껏 펼칠 수 없는 상황을 볼 때에 대단한 혜택이었다. 엄친 딸 인생이 절정에 다 달았을 즈음 그녀의 아버지가 결혼을 강요하며 학비를 끊자 휴학을 하고 돌아와 미술교사로 스스로 돈을 벌고 다음 해에 복학을 했다.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얹으려는 당시 여성들의 사고방식을 거부했고 스스로 돈을 벌며 자기 계발에 주력하는 삶을 택했던 그녀는 자신의 취향을 확실하게 알았고 타인에게 당당히 공개했다. 신랑한테 결혼의 조건을 요구하고 세계일주를 떠나기 위해 육아를 시어머니에게 맡길 수 있는 참신한 생각을 우리는 몇이나 생각해 봤을까.......
너무 앞서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그녀를 '트러블 메이커'로 취급하며 외면했던 사회에서 비극적인 죽음으로 막을 내렸지만 참 확고한 취향이었다.
문득 화려하고 뜨거웠던 젊은 시절의 내가 출산과 동시에 나는 없어지고 아이와 가정에 우선순위를 빼앗긴 나머지 '나의 취향'을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나 생각해봤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한 생애 주기가 과거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미래는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으니까......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잊어버려지지 않을 황당한 남편과의 대화는 이럴 때마다 떠오르곤 한다.
"근데... 다른 집에서는 제일 맛있는 음식은 애들한테 먼저 먹이고 다음은 남편 순으로 먹지 않냐?"
"???"
" 우리 집은 네가 제일 먼저 먹잖아 그치?..." 그때 그 입을 꿰맸어야 했나......
"치사하게 먹는 거 가지고 되지도 않는 비유는......"
"뭐 그렇다는 거지......"
지금 그때 일을 얘기하면 기억나지 않는다며 잡아떼는 남편 시점의 모성은 아마도 맛있는 음식을 가족에게 양보하는 미덕이었나 보다.
<유태인의 교육법>이라면 열광하며 관련 책을 읽는 엄마들을 볼 때 그보다 유태인들의 문화를 알면 자연히 유태인 교육법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몇 년 전까지 가까이서 접했던 그녀들은 남편에게 다정한 표현을 자주 하고 자식에겐 엄숙한 편이다. 팁을 건네줄 때 "say! thank you."라고 가르친다. 친구들한테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의 고용인들에게 후한 모습이 참 우아한 여자들이었다.
이들의 문화를 닮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던 건 그게 바로 내 취향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취향은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