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나를 찾아온 당신
나이 앞에 숫자가 바뀔 때마다 환경도 바뀌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요즘 들어 좀. 아니. 많이 벅차다.
엄마 덕인지 10살 전에 녹용을 세 번 먹어야 커서 잔병치레가 없다는 속설에 어찌 되었든 난 건강했다. 주변에서 중년이 된 친구들이 하나둘씩 입원했다는 소식에 통화를 하면 이들은 나를 향해
"네가 비정상이야. 우리 나이에 아픈 게 당연하지. 인생에 반을 살았는데 기계 부품 갈 듯이 우리도 하나씩 교체해야 하는 나이잖아. 안 그래?"
오히려 내가 일반적이지 않다며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나는 7년 주기로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접대를 하고 있었는데 초대한 적 없는 손님은 한 번씩 찾아와 내 몸뚱이를 쥐락펴락 흔들어놓다가 사라지곤 했다.
첫 만남
첫아이가 막 돌을 지났을 때 친정엄마의 사업이 조금씩 확장되어 관리가 필요했고 자식은 나뿐이었기에 자연스레 나의 입지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생소한 사업이라 35세인 내가 감당했던 돈의 단위가 커서 욕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사업장 앞 어린이 집에 1시간 반만 맡기고 현장으로 달려올 때의 죄책감도 있었지만 돌아오는 대가는 그야말로 꿀이었다. 돈 버느라 육아를 소홀히 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는 허세로 나의 몸은 분신술을 부리듯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날 가벼운 감기 증상인가 싶더니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근육통이 점점 심해져 속수무책으로 종이인형처럼 구겨졌다. 병원을 다니며 감기약, 근육주사 처방을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 채로 3주가 지나자 눈썹 위에 띠처럼 두른 발진이 생겨 피부과를 찾게 되었고 대상포진이라는 들어보지 못한 질병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바이러스가 몸속에 잠복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약해진 틈에 발생하는 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질병이라고 했다. 다행히 한 번의 복용으로 거짓말처럼 그동안 앓던 통증이 사라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과한 욕심이 가져온 교훈이었을 텐데 30대에 겪은 조금 심한 감기몸살 정도로 치부하며 그렇게 잊었다.
재회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많은 게 변해있었다. 안세병원 사거리 표지판이 바뀌었고 세종이란 도시가 생겼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쁜 걸음걸이로 저마다의 삶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촌뜨기가 되어버린 나는 리셋이 필요했다. 조바심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버거운 스케줄을 잡았다. 다들 무리라고 한 마디씩 했지만 나의 욕심은 또다시 발동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바닥에 등을 대지 않고 쪽잠을 자다 보니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은 생활이 되어버린 어느 날 퇴근 무렵 체기가 있더니 몸을 펼 수 없을 정도로 명치가 아파왔다. 그대로 주저앉아 동료들의 마사지와 소화제를 먹고 버티며 집으로 와 종합 감기약을 입에 털어 넣어 잠잠하기를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고 가족들은 올 것이 왔다며 젊지 않은 나이에 살인적인 스케줄이 가당키나 하냐며 한 마디식 화살을 쏘아댔다. 하긴 고3 딸보다 더 많이 책상에 붙어 있는 웃픈 상황이었으니 대견하다는 응원보다는 혀를 차는 탄식의 소리를 들어가며 시름시름 시들어 갈 즈음 불현듯 대상포진이 떠올랐다. 다음날 피부과를 찾아갔더니 의사는 단번에 대상포진이라고 하며 배꼽 옆에 희미하게 띠를 두른 발진을 가리켰다. 우린 그렇게 10년 만에 반갑지 않은 재회를 했다. 처음부터 발진이 생기면 쉽게 진단을 받고 빨리 처치할 수 있을 텐데 왜 항상 통증의 끝판왕을 앓고 난 뒤에야 알아내는지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물론 역시나 복용 후 이내 컨디션 회복으로 그냥 잘 가라는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이쯤 되면 운명
매일 코로나 확진자수를 발표를 지켜보면서도 다행히 내 주위 확진자는 없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가까운 지인의 확진 소식이 들려오면서 텀이 짧아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되었다. 서울 과부산을 오가는 출장도 조심스러웠고 사람들 모인 곳에서 기침이라도 하면 따가운 시선에 예민해지곤 했다. 그렇게 출장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나 몸살기가 찾아왔다. 우려하던 대로 나도 확진인가? 별의별 생각에 약국으로 달려가 상비약을 준비하고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하고 확인한 결과 음성이었다. 출장으로 피곤해서 몸살인가 보다 싶어 약을 먹고 일주일이 지나자 기침이 심해 갈비뼈 통증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기침의 울림, 자세가 바뀔 때도 통증은 더 심해지고 나아질 기미가 없이 4주 차에 접어들어서야 엑스레이 검사를 하고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또다시 피부과를 찾게 되었다. 누가 봐도 코로나 증상이었건만......
"대상포진입니다."
역시나. 젠장 이쯤 되면 난 해마다 대상포진 예방 접종 대상자로 분류되지 싶었다. 5일 치 약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 서글펐을까. 약값은 왜 이리 비싼지 이 독한 약이 내 간과 콩팥에 얼마나 무리를 줄지 걱정할 나이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또 다른 후유증
이제는 성형외과를 찾는 대신 모발과 피부에 공을 들여야 하는 나이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스스로 채찍질을 해대며 자기 관리라는 명목으로 남다른척해왔다. 한 발 앞서간다는 말에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한 결과가 한 달을 앓고 다크서클이 턱밑으로 내려온 불쌍한 아줌마가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앓던 적 없는 대상포진을 세 번씩이나 걸렸다는 건 내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몸에서 수없이 사인을 보냈음에도 무시했으니 정신 차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제야 확인 한셈이다.
"6개월 후에 꼭 예방 접종하세요."뒤돌아서는 등 뒤로 젊은 의사가 신신당부를 한다.
"네......"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내뱉는다.
'이렇게 살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