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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Sep 29. 2022

글 쓰는 대표, 그림 그리는 대표

어쩌다 보니 ……

선생님은 말없이 그저 눈앞에 그림을 영혼 없는 무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한참을.

30년도 지난 그때의 표정은 지금도 선명한데 그 표정에서 난 좌절, 수치, 오기 같은 오만가지 감정을 느꼈다. 겨우 입 밖으로 내뱉은 한마디 “넌 유화를 해라.” 어쩌고저쩌고. 불라불라. 그 뒤에 말은 더 이상의 들리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물감이 마르지도 않은 도화지며, 화구통을 정리해 미술실을 나왔다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을 거야……그렇게 미대를 포기했고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외고에 원서를 접수했다. 유화를 하라는 말에 왜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마치 넌 미대 갈 실력이 안되는데 그래도 굳이 하겠다면 옛다! 뭐 이런 식?으로 받아들였던 미성숙한 이해력이었다.

그때 난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인생의 미래를 하찮은 찰나의 감정으로  단정 지었던 그때의 나를  요 근래 자주 소환하곤 한다.


왜 글을 써야 해?


가끔 비즈니스 커뮤니티에서 만난 모임에서 브런치 작가, 라디오 시민리포터, 회사 홍보 영상 대본 등 직접 글을 쓴다고 하면 놀라운 반응들을 보이며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 브런치 작가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둥 글 쓰는 게 어렵다는 둥. 물론 나 역시 글 쓰는 게 어렵다. 나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다 보면 자칫 읽는 사람이 오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개입으로 완성된 글은 내 글 같지 않아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고 적정선에서 타협을 하려다 보니 쓰고 검토하고 수정하기를 반복 한끝에 내보내는 게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노력형이 맞는 거 같다. 후딱 써놓고 천천히 가다듬기.

그럼에도 글쓰기의 필요성은 비즈니스를 할수록 더욱 실감한다. 기업의 가치를 알려야 하는 대표가 외주를 통하지 않고 마케팅과 브랜딩을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아한 집사의 탄생


그럼, 그림은 왜?


워낙 태생이 있어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어릴 적부터 뭐든 주목받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용기는 없는 그런 이상한  여자애가 나였다. 이젤과 화구통을 들고 다니는 모습에 끌려 그림을 시작했지만 친구의 그림을 칭찬하는 미술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내 것이 아니라는 질투에 포기했던 그림 역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실과 바늘처럼 글에 따라붙는 필요조건이 돼버렸다. 거래처에 보낼 리플릿과 현수막이라던지 시제품 초안을 스케치하고 문구를 넣어야 했기에 내 머릿속에 있는 구성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찾고 참여하게 되니 주변에서 비즈니스에 집중하지 않고 엄한 짓을 한다고 여기는 우려의 목소리도 듣는다.


도자기에 그림 스케치 할 꼬야



내가 알아야 안전한 세상


지금은 제품 서비스의 질은 기본 적으로 우수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제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시대이다. 어느 분야건 팬심을 확보해야 하고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매번 내가 먼저 시도하고 사용하는 검증 단계를 거치게 되면 시간이 걸리고 현금화되기 전까지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해서 이상을 꿈꾸는 대표라고 진담 같은 농담을 듣긴 하지만 좀처럼 타협이 되지 않는다.


자격지심에서 나온 결핍


이런 버릇은 순전히 결핍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 성숙했던 나는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동반해왔던 거다. 기고만장한 이 삼십 대에는 인정하기 싫었고 이후에는 슬며시 내 맘속 밀실에 가둬놓고 남들에게 감추다가 슬쩍 얹어 커버하려는 버릇인 거지


나의 소중한 팬



근데 이게 꽤 재미나.


가다듬은 글과 그림이 지금 하고 있는 비즈에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것들은 나로 투영되어 떠돌아다니며 작은 팬층을 만들고 있다. 몰랐던 고객은 왠지 크리에이티브한 대표라 만나고 싶었다거나 기존 고객들은 남다른 대표?라는 멋진 표현으로 나를 좋아해 주고 있다. 비록 몇 천 몇만 명이 아니지만 최소 장사꾼이 아닌 진심이 닿는다는 소수의 나의 편들. 그들이면 지금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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