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 손에 카메라를 쥐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백성현 작가의 <당신에게 말을 걸다>라는 에세이 집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백성현 작가는 코요태 출신의 래퍼 빽가의 본명이었고, <당신에게 말을 걸다>라는 책은 가수 빽가가 ‘by100’이라는 예명으로 상업 사진을 찍게 된 계기에 대해서 에세이 형식으로 적어 나간 책이었다. 읽은 지 10년이 넘은 책이라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대충 빽가가 정지훈(가수 비)과 어릴 적부터 가수를 꿈꿔오는 과정에서 카메라를 잡게 된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 그의 과거 속에서 카메라가 남긴 추억의 조각들이 15살이었던 내게 너무 따뜻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던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책을 읽고 부모님에게 카메라를 사달라고 졸랐었다. 집에도 가족여행 때 쓰는 콤팩트 카메라가 있었지만 나는 공용이 아닌 나만의 카메라를 원했다. 백성현 작가가 책에서 보여준 작가 자신만의 시선을 나도 나만의 시선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들의 변덕에 100만원 나가는 카메라를 덥석 사줄 수 있는 부모님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끈질기게 부모님께 들러붙었고, 결국 가족 공용 카메라를 내 전용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거기다 기말고사에서 평균 97점을 넘으면 내가 원하는 DSLR도 사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겐 첫 카메라가 생겼다. 그 카메라는 바로 캐논의 ixus 800 IS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전자기기에 돈을 잘 쓰지 않는 분이셨기에 처음에 가족 전용 카메라를 손에 넣었을 때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저 내 DSLR을 갖기 전 사진 연습을 위한 연결 다리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ixus 800 IS는 중학생이던 내 손바닥보다도 작은 콤팩트 카메라여서 갖고 다니기도 편했고, 600만 화소에(당시 콤팩트 카메라는 이정도가 평균이었음) 조리개 값도 2.8~5.5, 거기다 자동 줌으로 환산 35-140mm까지 찍을 수 있는데다 자동 손떨림 방지 기능까지 탑재돼 있어서 카메라 왕초보인 내게 아주 적합한 카메라였다. 이런 장점을 나도 은연중에 느꼈던 것인지 중학생 때만 해도 구리다고 뒷전에 두던 이 카메라를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 미국 수학여행을 갔을 때 요긴하게 써먹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Ixus 800 IS는 내게 좋은 연습이 되었다. 어디든 들고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잘 찍었든 아니든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마음껏 남길 수 있었다. 물론 지금 그때의 사진들을 보면 두 눈을 자동을 감게 될 정도로 민망한 퀄리티지만, 그땐 그것 만이라도 너무 행복했고 조그맣게 ‘찌직’거리던 셔터음도 내겐 찰나를 멈추는 마법주문 같았다. 하지만 Ixus가 준 경험은 오히려 감질맛처럼 남아 DSLR에 대한 욕구에 기름을 부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던 내게 ixus가 남긴 여운은 동력이 되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결과는 96점대로 소수점 단위의 점수가 모자라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목표 점수였던 97점을 달성하지 못한 나는 억울함에 방방 뛰었다. 소수점 차이로 달성하지 못한 목표가 아쉽기도 했고, 학수고대하던 DSLR이 눈앞에서 날아갔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이 불쌍했던 걸까, 아니면 카메라에 대한 내 열정에 뜻을 굽히신 걸까, 부모님은 소수점 정도는 봐줄 수 있다며 내게 DSLR을 사주셨다.
내 첫 DSLR은 캐논의 EOS 500D였다. 그땐 어떤 게 좋은 카메라인지도 몰랐고, 렌즈는 뭐가 좋고 화각은 무엇이며 조리개는 또 무엇인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냥 대포 같은 검정색 DSLR을 손에 쥐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들려오는 ‘찰칵’ 소리가 내 웃음소리를 대신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당시에 찍은 DSLR 사진들을 보면 ‘정말 그냥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좋았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온다. 절반 이상이 흔들린 사진에 뭐가 피사체인지도 모를 사진들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그 사진들을 보면, 뷰파인더 뒤로 설레는 눈을 뜬 채 확신의 셔터를 누르고 있은 내 모습이 떠올라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사진을 보면 사진을 찍은 사람의 시선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이 말을 말 그 자체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사진은 그 사람이 보는 시선을 사진기라는 기계로 남기는 거니까, 사진은 작가의 시선을 담은 예술이라는 말이겠구나.’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어릴 적에 내 사진을 보니 그 말이 똑같지만 조금은 더 깊게 와 닿게 되었다. 사진은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기에 그 순간에 그 작가가 느꼈을 감정도 녹아 들어 있었다. 카메라를 처음 쥐었던 중학생의 설렘, 인사동을 거닐던 모든 순간을 담고 싶었던 초짜 사진가의 열정, 흔들린 사진조차 아까워하며 지우지 않고 모두 인화하던 사진을 사랑하던 마음까지. 그 어리숙하고 정돈되지 않은 사진들에는 예술적 의미는 없을지 몰라도 내 어린시절의 설렘과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 잠시 공연에 빠져 사진을 뒷전에 둔 적도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들도 다 처분해버리고 한동안은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다녔다. 왜 그랬는지를 되짚어보면 사진을 찍는 이유가 변했던 것이 컸던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순간을 남긴다는 것’에서 낭만을 느꼈고, 사진을 찍고 있는 나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먹을수록 사진을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게 되면서 사진을 찍는 이유가 변질됐다. 그러다 보니 사진은 내게 행복한 것이 아닌 자랑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고, 그 와중에 대학생이 되고 공연에 빠지게 되면서 그 설렘의 저울이 반대로 기울었던 것이다. 그러다 본가에서 EOS 500D로 찍고 인화해둔 사진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그런 감정들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발로 찍어도 이것보단 낫겠다 싶은 사진들이 역설적이게도 ‘잘’ 찍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사진에 대한 권태를 말끔히 씻어내려버렸다.
이제 내게 카메라는 부담이 사라진 기계가 되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만큼 내게 사진에 대한 열정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진작가를 꿈꾸며 많은 사진들을 찍어왔지만, 지금은 정말 남기지 않으면 후회할 순간들을 남기는 용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런데 세상엔 왜 이리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넘치는지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내가 원하는 순간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과거와 현재 모두, 카메라는 내게 휴대폰처럼 필수적인 생필품이 되었다. 다만 셔터에 담기는 열정의 무게가 가벼워졌을 뿐, 그럼에도 사진에 찍힌 찰나의 순간은 사랑과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