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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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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J Jun 28. 2024

잘못 꼬여버린 내 첫 해외 생활의 시작

그 선택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달라졌을까?





나는 고등학교를 외국에서 졸업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어학원과 연계가 되어있는 국제학교로 어학원을 나온 학생들 대부분이 같은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나는 어학원 수업을 늦게 시작한 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보다 3개월 혹은 6개월 먼저 와서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고 어학원에는 중국인, 홍콩인 그다음 한국인이 제일 많았고 몇몇의 태국인과 일본인, 인도네시아인들 등 정도가 있었다.


그리고 수업 후에는 다들 같은 나라 학생들끼리만 어울려서 노는 느낌이었는데 한국인들은 다들 금전적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 유학을 온 건지는 몰라도 여럿이 몰려다니면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노래방 가고 놀러 다니는 분위기였는데 나도 한국인이고 새로 수업에 들어왔다 보니 당연히 그들에게 몇 번 초대가 됐지만 한 번도 가지는 않았다.


영어 배우러 와서 굳이 한국인들끼리 어울려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지금도 술담배를 안 하지만 10대 중반이었던 그 당시에 독한 술과 어마어마한 가격의 담배는 더더욱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뭣도 모르고 순진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그들의 초대에 몇 번 응하기라도 했으면 나의 생활은 조금이나마 달라졌을까?








그렇게 몇 번의 거절 이후 한국인 무리들의 무례한 발언들과 따돌림이 시작됐는데 물론 심적으로 불편하기는 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게 같은 날에 나와 수업을 듣기 시작했던 미얀마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 친구는 금방 집 근처의 다른 어학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 친구가 나가고 나서는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일본인 친구들은 모두 다들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고 어학원 대부분의 중국, 홍콩 그리고 한국인 학생들은 모두 나와 같은 학교로 같은 시기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국제학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 학교에는 다음 학년 준비반이 있었는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동안 듣는 수업들로 현지인들이 듣는 수업과는 다르게 반이 구성이 되어 있었기에 나는 어학원 졸업 이후에도 반년 정도를 이 한국인 무리와 함께 수업을 들어야 했다.


본의 아니게 한국인 무리와 척을 지게 된 상태에서 어학원 과정을 마치고도 학교에서조차 같은 수업을 듣게 돼서 불편한 상황이었기에 수업에서 늘 그들과 멀리 떨어져서 앉다가 어학원 다닐 때에 옆반의 얼굴만 알고 지내던 홍콩인 친구 1명과 어울리기 시작했는데 곧 그 친구와도 틀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수업에서 짝을 지어서 10분 동안 해야 하는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과제가 있었는데 2명이 함께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각자 5분씩 프레젠테이션 후 본인이 발표한 파트에 대해서 선생님에게서 질문을 받고 대답해야 하는 과제였다.


나는 어울리던 홍콩인 친구와 짝이 되었는데 그 친구는 전혀 협조할 마음이 없어 보였고 과제는 어떻게든 해야 하니 파워포인트는 다 내가 만들었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니 친구에게 내용을 알려줬는데도 친구는 본인은 할 필요 없고 나에게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였다.


그래서 10분간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본의 아니게 내가 8분 정도를 그 친구는 2분 정도를 하게 됐는데 하필 그 수업이 깐깐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영어선생님 수업이었는데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시기에 전부 내가 답변을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그 친구에게 답변을 해보라고 하셨다.


물론 그 친구는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 내가 넘기는 파워포인트 페이지에 내가 써 준 글만 그대로 보고 읽었던 거라 당연히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고 당시 그룹 과제이다 보니 다른 학생들에게는 팀별로 전부 같은 점수를 주셨지만 이례적으로 나와 그 친구에게는 전혀 다른 점수를 주셨다.


점수에 따라서 합격 그리고 낙제로 나눠졌는데 나는 합격점수, 그 친구는 낙제 점수를 받았다.



당연히 화가 난 친구는 선생님에게 그룹 과제인데 왜 다른 점수냐고 따졌고 선생님은 누가 봐도 넌 아무것도 안 하고 써 준 거 보고 읽은 건데 내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너랑 혼자 다 한 애랑 같은 점수를 줘야 하냐고 대답하셨다.


그렇게 그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친구..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친구의 친구들인 같은 반의 다른 홍콩, 중국인 무리에서도 따돌림이 시작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근처에 지나가면 광둥어로 소리 지르면서 삿대질 같은 거였달까..

물론 내가 알아듣지를 못하니 딱히 타격감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잘 지내던 홍콩 친구와 그리 되었으니 한국인 무리들은 당연히 너무도 신나 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한국인은 한국인 들끼리 중국인 홍콩인들은 본인들끼리 어울려서 그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나와 마주칠 때마다 욕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다른 거 보다도 점심시간에 다들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들에게 혼자 점심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만족감을 주기가 정말 너무 싫었던 나는 한동안 혼자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던 적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렇게 피하기만 할 수도 없고 또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변기 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 구조는 카페테리아가 있고 그 앞에 큰 안뜰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아시안들은 대부분 카페테리아나 카페테리아 앞에서 어울리며 점심 먹는 분위기였고 현지 학생 무리들은 안뜰 잔디밭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 분위기였는데 그중 한 무리 뒤에 가까이 앉아서..


그러니까 멀리서 보면 내가 혼자가 아닌 함께 여럿과 어울려서 먹는 거처럼 보이도록 그렇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무리 뒤에 바짝 붙어 앉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 있었다.





밤색 안경테와 잘 어울리는 크고 예쁜 헤이즐 색의 눈에 진한 갈색 웨이브 머리와 보조개가 아주 예쁜 친구인데 그 친구가 바로 나의 첫 현지인 친구인 니콜이다.


예쁜 외모뿐만 아니라 정말 착하고 천사 같은 친구인데 그 당시 그 친구가 내게 웃으며 말을 걸었던 그 순간은 아직까지도 내게는 영화처럼 생생하다.



양볼의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으면서 예쁜 목소리로

“ 안녕, 넌 이름이 뭐야? ”라고 내게 물어봐주는 순간 어둠 속에 내리쬐는 한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니콜이 내게 말을 걸자 함께 점심을 먹던 니콜의 친구들의 시선들도 모두 내게 집중되며 같이 앉자고 자리를 만들어줬고 나는 그날 그렇게 니콜과 니콜의 친구들 여럿과 친구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한국인 무리들은 너는 네가 영어 잘하는 줄 아냐고 영어도 못하는 게 영어 잘하는 줄 알고 현지인 애들이랑 어울리려고 하는 게 재수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사소한 시비들이 종종 있었다.


당시에 학기가 끝나려면 총 3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었는데 학년 담당이시던 교감선생님을 찾아가서 지금 다음 학년 준비반에 있는데 빨리 적응하고 배우고 부딪혀보고 싶다고 설명을 하고 나는 그렇게 그 반을 빠져나와서 현지인 학생들과 함께 정식 학년 수업을 듣게 되었다.




반이 다르니 마주칠 일이 적어진 데다가 내가 무시하고 반응을 안 하니 시비의 횟수도 자연스레 줄게 되었고 또 나에게 가장 시비를 많이 걸던 한국인무리 중 한 여자애가 1년 반쯤 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나에 대한 시비는 점점 사라졌다.




비록 지금은 멀리 있지만 늘 고마운 니콜과는 아직도 새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내 친구 니콜 같은 분들만 곁에 두시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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