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얘기하다가 생각났는데
나는 그렇게 정의로운 성격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도 아니다.
내 일이나 내 사람들 일이 아닌 이상 관심도 없고,
남의 일에는 휘말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렇다고 누군가가 비겁하게 본인들보다 약하고 만만하다고 괴롭히는 걸 두고 볼 수 있는 성격 또한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 학교 근처 아동 보호시설(당시 고아원, 현 육아원)에 살던 H가 있었다.
반 친구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엄마 없고 아빠가 버리고 갔다고,
매일 더럽고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따돌리고,
뭐 잃어버리면 H가 훔쳐 갔다고 하고 놀리고 때렸다.
한 번은 H가 남자 화장실 바닥에 실수를 했는데,
당시 쉬는 시간이라 우리 반, 옆 반, 옆옆반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가서
남자 화장실에서 오줌 쌌다고 단체로 놀리고 난리가 났고
H는 거기에 꼼짝없이 갇혀서 오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물 마시러 나왔다가 그 모습을 목격하고
너네는 실수 안 하냐고 다 비키라고 그 사이 뚫고 들어가서 H가 실수한 거 휴지로 닦고 데리고 나왔다가
반 애들이 H 편들었다고 나한테도 너도 엄마 없냐고 시비 걸었었다.
생각해 보니 어린것들이 참 못 됐네?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으려나? 그러지 마라 정말.
당시 우리 반에는 선생님에게서 받는 칭찬 스티커 붙이는 칸이 있었고,
내가 남자 화장실 바닥 닦는 걸 마침 지나가다가 우연히 목격한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칭찬하면서 스티커를 4장을 주셨는데,
한 번에 2장 이상 주는 적 없는 분이라 나도 놀랐었고 4장 받은 게 모두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그 후 바로 수업 시작해서 스티커를 못 붙이고 필통 속에 넣어 뒀다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 다녀와서 붙이려고 보니 도둑맞았는지 스티커는 사라져 있었다.
변비나 걸려라.
H와는 그 이후 다른 반이 되었는데,
아마 2학년 때인가? 입양돼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학 가기 전에 나한테 찾아와서 그때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이후 1년? 쯤 뒤에 엄마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횡단보도에 여자 어른과 함께 서 있는 H를 우연히 발견해 창문을 내리고
“H야!” 하고 부르며 손을 흔들었더니,
세상 환하게 웃으며 갑자기 여자 어른의 손을 잡고 그 손을 보여 주면서
“안녕! 여기 우리 엄마야!!” 하며 나를 가리키고
“엄마, 내 친구 ㅇㅇ야”라고 소개하던 그 해사한 미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H의 어머니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H에게
“행복해야 해! 잘 지내!”라고 외쳤고
마침 신호가 바뀌어 엄마 차는 신호를 받고 그렇게 출발했다.
그게 나와 H의 마지막이었는데 종종 생각이 난다.
H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H가 떠난 곳과 같은 보호시설에 살던 우리 반 S가 머리에 비듬이 있다고 놀림을 받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학교 끝나고 S를 집에 데려가서 직접 머리를 감겨 주고 말려 줬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 후에 연락이 끊겼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느 이른 저녁에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는데,
술이 약간 취해 있던 S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고 내게 안기며 갑자기 엉엉 울면서
그때 머리 감겨 줘서 정말 너무 고마웠다고 하길래 나도 눈물이 나는 바람에 같이 껴안고 울었던 경험이 있다.
글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비겁하게 여럿이 누구 하나한테 그러는 꼴 못 두고 보는데,
그와 동시에 남의 일에는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상한 성격이다 뭐 대충 그런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