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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J Jun 26. 2024

In my dream

지난밤 핏빛 세상





지난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내 세상은 온통 핏빛으로 흥건했으며 피를 철철 흘리며 수도 없이 바늘로 찔림을 당하고 급기야 나중에는 피가 모자라서 수혈까지 받게 되는 아주 엽기적인 꿈을 꾸었는데 나는 이 꿈을 꾼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약 4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잡은 며칠 뒤의 병원 예약에서 아마도 내 소중한 피를 4통 정도 가볍게 비워주고 나올 텐데 채혈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과정이 문제라면 문제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의 베프조차 네 혈관은 참 찾기 힘들다고 얘기할 정도로 나는 채혈해 주시는 분들이 꽤나 힘들어하는 혈관을 갖고 태어난 건지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채혈이나 내게 링거를 놔주시는 의료진분들은 늘 인상을 쓰며 바늘로 팔을 2번 정도 찔렀으며 그와 함께 따라오는 그들의 표정과 영혼 없는 사과는 디폴트 값이었다.


2번을 찌른 것에 대한 변명인 건지 나름의 설명인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채혈이 마무리가 된 후 늘 함께 따라오는 말은 혈관 찾기 진짜 힘드네요.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영혼과 진심 가득한 사과를 받게 된.. 그리고 바늘 찌르기를 두려워하게 된 날이 발생했다.




때는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신나게 놀 거라고 벼르고 있었던 나의 고3 겨울 방학

(결론을 말하자면.. 수술에다가 재활 때문에 나의 야심찬 계획은 시원하게 제대로 망해버렸다.)


놀기는커녕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고 늘 시끌벅적하던 4인용 병실이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던 그날은 링거를 교체하러 온 의료진분이 내 혈관을 제대로 못 찾은 날이었다.


처음 2번은 물론 디폴트라 익숙하다.

덤덤한 말투의 ” 혈관이 잘 안 보이네요. 다시 한번 찌를게요. “




3번째 시도부터는 당황해서 눈동자가 흔들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하기 시작하고..


4번째 시도에는 이제는 다른 쪽 팔을 내어달란다..

분명 울고 싶은 건 나인데 그분이 먼저 울먹거리며 선수를 치시는 바람에 내가 울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5번째 시도에서는 정말 울 것 같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조용히 속삭인다..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찔러볼게요…




그 후 진심 어린 몇 번의 사과와 함께 시원하게.. 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럭저럭 마무리가 되었다.


이때도 바늘이 살짝 삐뚤게 잘못 들어간 건지 링거 맞는 내내 정말 아팠고 또 바늘 꽂아둔 곳에서 중간중간 계속 피가 새어 나온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분 마음 같아서는 한 번 더 찔러보고 싶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찌르기 전에 이미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셔서.. 그냥 두셨던 거 같기도 하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화를 내지 않았던 성격이라 5번의 찌름에도 불구하고 인상도 안 쓰고 뭐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화를 내지 않았는데도 먼저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받아본 사과는 그날이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거 같다..



마지막으로 시도한 바늘을 꽂고 황급히 무언가에 쫓기든 나가신 후 같은 병실에 계시는 할머님과 아주머니 그리고 아기 어머니가 다들 안타까워하며 한 말씀씩 하셨다.




“ 학생, 많이 아플 텐데 괜찮아..? “




이날 이후 병원에서 채혈을 앞두면 그날의 공포가 스멀스멀 살아남과 동시에 찔러봤자 그날만큼 많이 찌르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공존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독일 병원에서는 운이 좋게도 채혈할 때에 늘 1번째 시도에 끝이 났다.



대신 고무줄로 굉장히 꽉 조이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보다 팔을 더 많이 때려대고..

분명 혈관을 찔렀는데도 이상하게 피가 잘 안 나오니 통에 피가 다 찰 때까지 계속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가 하라는 의료진분의 지시가 함께 내려온다.



며칠 뒤의 내 혈관이 열일해 주기를..

그래서 이번 채혈은 좀 더 수월하게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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