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훔친 자존감 #8

지배

by 문화

수화는 지혜와 여행을 다녀온 후 그녀에 대한 친밀감이 커졌다. 밤새 은밀하게 사적인 얘기를 나누었고 24시간 내내 함께하며 1박을 한 것이 그렇게 느끼게 했다. 다만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정윤이었다. 하지만 지혜가 정윤을 배제시키려 하지 않았기에 직접적으로 본심을 내비칠 수 없었다. 그저 지혜 가까이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해주며 정윤보다 우위에 서는 것 뿐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정윤이 지혜와 수화가 부쩍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던 날이었다. 티타임으로 카페로 향한 이과장, 정윤, 지혜, 수화가 긴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자연스럽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과장과 정윤이 갈라져 맞은편에 앉자 지혜가 이과장 옆에 앉았고, 수화는 정윤의 옆이 아닌 지혜의 옆자리에 앉았다. 덩그러니 혼자 반대쪽에 앉은 정윤은 당황스러웠지만 일말의 여지로 우연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개의치 않았다. 정윤의 시야에 불이 켜진 지혜의 핸드폰 화면이 들어왔다. 정윤과 함께 갔던 전주의 풍경이었다. 사진을 함께 찍었던 장소라 확신 할 수 있었다. 수화 역시 밝아진 지혜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흘깃 보았다. 사무실로 돌아간 수화는 바로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꾸었다. 지혜와 함께한 전주 여행사진으로.

그 변화를 바로 발견한 것은 지혜와 정윤이었다. 다음날 점심시간, 그들은 다시 모였다.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위에 올려두었고 수화의 핸드폰 화면에 불이 켜졌다. 지혜는 수화의 배경화면을 보았고, 그에 응하듯 그날 오후 지혜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수화와 함께 했던 전주여행 사진으로 바뀌었다. 수화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지혜에게 따로 보여주었다. '네 번호 이렇게 저장했어' 지혜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며 이름 옆에 하트를 붙혔다. 그리고 그에 반응해주듯 지혜는 수화의 연락처 옆에 이모티콘을 붙혀주었다. 마주치는 손뼉에 수화는 쾌감을 느꼈다.

정윤 역시 수화와 지혜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시야에 계속 들어왔다. 수화의 반응과 그에 응하는 지혜의 마음이 모두 느껴졌다. 하지만 정윤은 그런 마음들이 피로했고 머릿 속은 늘어나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이직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가야지'




"정윤, 정윤이 셋 중에 나이가 젤 많다며?"


너스레를 잘 떠는 영업팀 팀장은 정윤과 대화가 늘면서 자연스레 말을 놓았다.


"네?"


"수화가 그러던데?"


"아..네.."


"정윤도 남자친구 없어?"


"네?"


"수화가 정윤씨도 남자친구 없다고 하던데?!"


"아..네..맞아요."


"정윤씨 정말 어려보인다~나이가 꽤 있었네"

"얼른 만나야지."


정윤은 달갑지 않은 대화였지만 기성세대의 악의없는 오지랖이라 시덥지 않게 반응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윤을 거슬리게 한 것은 수화가 반복적으로 정윤을 대상 삼아 자신의 안위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업무 문제로 이과장이 정윤과 수화를 회의실로 부른 날이었다. 이과장은 정윤과 수화에게 개정된 규정을 설명하며 앞으로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자 했다. 회의실로 모이기 전 회사 내에서는 수화의 잘못된 업무 진행으로 영업팀에서 사건이 터져 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과장은 정윤에게 수화가 하는 업무를 관리하도록 지시했다. 정윤은 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해서도 수화의 업무 태도로 힘들어하던 터라 그녀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관리한다는 것이 보상없는 책임만 늘어나는 것이라 심기가 불편했다. 수화는 회의 내내 이과장이 하는 말을 메모하는 것 외에는 말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불편해진 마음으로 점심시간을 웃으며 보낼 수 없을 거 같아 정윤은 그날도 지혜에게 혼자 먹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지혜는 수화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을 했지만 수화는 그냥 회의시간에 이과장의 업무지시가 있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정윤씨한테 오늘 놀자고 해볼까?"


"정윤씨는 우리랑 놀기 싫어하는 거 같아."


"응?"


정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낀 수화는 지혜를 '우리'로 엮었다.


"무슨 말이야. 전주도 갔다왔는데"


"셋으로는 못 노는 사람같아...."


정윤이 지혜와는 잘 지냈기에 수화는 정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말보다 셋으로는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었다. 자신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에는 지혜가 업무로 잦은 실수가 있었던 수화에게 책임을 돌릴 것 같았고 '홀 수로는 어울리지 못하는 정윤'으로 책임을 돌려야했다. 그래야 자신이 피해자일 수 있었다.


"셋이..?"

"아니야. 정윤씨 친구들이랑은 셋이서 놀던데"


"너가 뭘 모르는 거 같아"

"그럼 정윤씨한테 그 영화 보러 가자고 해봐."

"그 영화 좋아하는 거 같던데"


지혜는 수화의 말에 반박했지만 수화가 얘기했던 정윤이 질투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다시 떠올랐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수화의 말만 따라 정윤을 시험했다.




회의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정윤은 그날 퇴근 후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음날 출근을 했고 이과장과 지혜, 수화의 점심시간에도 참여했다.


"정윤씨 이번에 그 영화 개봉하던데 같이 보러 갈래요?"

"같이 보러 가요!"


"아니요. 저는 굳이 영화관에서 안 봐도 될 거 같아요."


정윤은 거절했다. 지혜의 질문에 흥미롭게 답을 기다리는 듯한 수화의 표정을 읽었다.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정적인 답이 바로 나왔다. 지혜의 평소답지 않은 어색한 질문들이나 상황들이 수화의 말에 기인한 것이라 확신했고 다시 이 자리가 불편해졌다. 하나하나 불편한 상황을 읆기에도 예민한 자신이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지혜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다면 흔쾌히 응할 제안이었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은 이직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수화와 지혜 둘이 남은 퇴근길, 수화는 지혜에게 다시 정윤 얘기를 꺼냈다. 정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지혜는 그녀의 거절에 마음이 상했다. 옆에서 그 감정을 재차 확인해 주는 사람은 수화였다.


"정윤씨 이제 우리한테 거리두려나봐"


"..."


"같이 놀기 싫은가본데?"


지혜는 수화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정윤의 행동은 무미건조했고 때로는 차갑게 느껴졌다. 대답이 없는 지혜의 눈치를 살피며 수화는 내심 마음이 편안했다. 더이상 지혜의 관심이 돌아설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이미 틈이 생겼다.





#비교 #상대적우월감 #자존감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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