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훔친 자존감 #10

이건 너에게만 하는 이야기야

by 문화

수화는 정윤에 대한 지혜의 지나친 호의가 거슬렸고 그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다. 하지만 두루두루 잘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지혜의 마음을 알기에 정윤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만한 핑계와 사건이 필요했다. 그럴만한 사건은 이과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업팀에서 들려온 수화의 근무태도나 그간 수화의 업무 능력에 참다못한 이과장은 수화에게 요청한 자료를 늦어도 끝내고 가라는 지시를 했다. 수화는 그런 이과장의 마음도 모른 채 그녀의 성격에 기인한 과한 지시라 여겼고 그 부추김에 정윤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평소 이과장이 정윤을 아끼기도 했고, 정윤이 지혜에게 자신때문에 스트레스라는 말을 한 이상 이과장 역시 다를바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정윤에 대한 꼬리를 문 피해망상이었다. '내가 관리팀 사무실에 있었다면' 이 모든 것이 관리팀 사무실에 자신이 없어 피해를 당한다 생각했다. 기분이 나빠진 수화는 지혜에게 오늘은 점심을 따로 먹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이과장님이랑 먹기 싫어'


'왜?'


'이과장님 자꾸 나한테 뭐라고 해'

'그리고..'


'그리고 뭐?'


'나만 매번 커피 가지러 가고.. 쟁반도 내가 들고..'


'응?'

'무슨..?'

"그건 네 피해의식이야~'


'그럼 오늘 한번 봐봐'


수화는 지혜와 대화를 나누다 점심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지혜에게 다시 한번 자신이 피해자라는 위치를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혜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겠지.




수화는 점심시간이 되자 일층 로비에서 이과장, 정윤, 지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지혜는 수화가 소매를 당기지 않아도 그녀의 옆에 서 주었다. 어제 지혜에게 핀잔을 들은 수화였기에 이과장에게 대화주제를 건네며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화는 보란듯이 지혜에게 눈짓을 하였고, 지혜는 수화의 달라진 모습에 만족하는 듯했다. 식사를 마친 넷은 카페로 향하였다. 수화는 평소보다 먼저 진동벨을 가지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리고 다 마신 커피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지혜가 자신의 행동을 볼 때까지 인기척을 내었다. 지혜는 수화의 말을 상기하며 이과장이나 정윤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상황에 수화의 피해의식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의도적이라 생각하지 않아 직접 수화를 돕기로 했다. 식당에 가면 지혜가 먼저 나서 주문을 하고 메뉴를 받아오며 수화 혼자 하게되는 상황을 피했지만 수화에게는 탐탁지 않았다. 수화가 원한 것은 지혜가 자신의 편을 들며 이과장과 정윤을 떼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반응하는 지혜에게도 심통이 났다. 그러나 자신이 지혜를 놓으면 다시 혼자가 되기에 아직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되려 수화는 여럿이 모일 때마다 지혜에게 달려가 그 옆자리를 고수하고, 모두가 떠드는 와중에도 그녀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했다. 그녀의 행동은 영업팀 팀장이 눈치챌 정도로 직접적이었고 고집스러웠다.

"둘이 사귀어?"

수화의 행동에 영업팀 팀장이 지혜와 수화에게 던진 말이었다. 지혜는 영업팀 팀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화는 '우리'가 '단짝'으로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맘때쯤 정윤은 수화와 마찬가지로 이과장의 지시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쾌하게 느껴지는 수화의 맹목적인 행동들이 과하게 다가와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나 점심 혼자 먹고 싶어."

정윤은 지혜에게 지나가는 말로 몇 번 내뱉었다. '왜?'라고 묻지 않는 지혜에게 정윤은 이과장, 수화와 점심시간을 보내고싶지 않다는 뜻을 전할 수 없었다. 그런 정윤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혜는 혼자가 편해 보이는 그녀에게 상처를 받았다. 어쩌면 정윤은 함께일 수 없는, 자신과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 느끼게 했다. 정윤과 수화의 사이에서 외줄을 타느니 자신에게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수화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 어쩌면 모두가 평화로운 길이라 생각했다. 정윤이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는 빈도수가 점점 늘었고, 지혜 역시 그녀를 그대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수화는 자연스럽게 정윤이 없는 지혜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화는 영업팀 사무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무언갈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의 팀장이 집중하고 있는 수화에게 말을 걸었다.


"뭐 보는 거야?"


"팀장님! 이거 봐요. 너무 예쁘죠!"

"지혜씨 인스타그램이에요."


"지혜씨 여행 갔다 왔나 보네."


"네! 사진 너무 예쁘죠!"


수화는 연신 사진을 넘기며 팀장에게 떠들었다. 게다가 지혜가 회사에서 SNS 아이디를 알려준 사람이 자신 뿐이라는 것이 가장 흡족스러웠다. 회사에서 그녀의 1번이 되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수화의 마음에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영업팀 또래 직원들과도 사사로운 얘기들을 나누었고 그들과도 SNS를 공유하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수화씨, 남자친구 없다고 했죠? 아는 사람 있는데 소개받을래요?"


"정말요?! 좋아요!"


수화는 영업팀 또래 직원 은주에게 소개팅 제안을 받고 설레어했다. 하지만 소개받은 이와 몇 마디 연락을 나누다 심기가 상해 점심시간에 만난 지혜에게 은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은주씨 손절했어."

"이건 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야."

"걔도 카톡 프로필사진 안 보이게 나눴어."


"왜?"


"소개팅을 해준대서 받았는데"

"뭐 그런 남자를 소개해줘?"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진짜 어이없다"


"음..?"


수화는 별 생각 없이 샌드위치를 입 안 가득 넣고 오물거리는 지혜를 보며 자신도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이야기했다.


"아, 민경씨는 노래를 잘 부르더라!"


"아, 영업팀 민경씨?"

"어떻게 알아?"


"요즘 유행하는 그 아이돌 노래 있잖아"

"아이돌 얘기가 나와서 민경씨가 노래 부르고 내가 춤췄어."


"민경씨랑 그렇게 친해?"


"아! 아니! 별로 안 친해."


지혜의 물음에 수화는 서둘러 손사래 치며 부정했다. 혹여나 영업팀 직원들과 친해지는 것을 지혜가 알게되면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챙기지 않을까 너밖에 없다는 뜻을 강조했다. 지혜의 눈에는 계속 자신이 안쓰러워야 했고 둘만의 유대가 제일 우선이어야 했다. 지혜는 '나'의 고통과 불행에만 공감하여야 했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기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했다. 지혜는 정서적인 도움이라 생각했지만, 수화에게는 지혜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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