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훔친 자존감 #11

원동력

by 문화

지혜와 둘만의 점심시간 그리고 관심을 독점하는 것 같은 날들이 늘어갈수록 수화는 지혜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정윤이 낀 자리에서는 지혜 뒤로 숨어 쥐 죽은 듯 상황만 관전했다. 그런 수화의 태도에 지혜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다그치던 것도 이제 포기한 채 받아들였다. 정윤을 피해 티나게 지혜 뒤만 졸졸 따라오거나 보란듯이 멀찍이 서 발끝으로 땅만 차고 있는 수화의 행동에 정윤은 지혜에게 왜 저러냐는 질문을 하곤 했지만 지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수화는 줄곧 정윤이 자신을 싫어하고, 그녀가 무섭다거나 불편하다는 의사를 얘기하곤 했으나 굳이 그 마음을 정윤에게 전할리 만무했다. 그런 수화와 지혜의 상태를 모른 채, 정윤은 다시한번 더 지혜가 수화를 피해자로 느끼게 만들었다.


"수화씨는 휴가를 가면 내가 대체해야 하는데 나한테 말도 없이 휴가를 갔어!"

"생각이 없는 거 아냐?"

"권대리님도 나한테 지금 수화씨 휴가를 왜 이렇게 길게 썼냐고 하더라니까"


수화에 대한 험담을 하는 정윤에게 지혜는 반감이 들었다. 이미 지혜는 수화의 번호를 별명으로 저장할만큼 돈독해졌기에 예전과 달리 정윤에 대한 이해보다 공격적인 태세를 가졌다.


"휴가 간 게 왜요?"


"백업자한테 스케줄 협의는 해야지!"


달라진 지혜의 반응에 정윤은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간 지혜는 휴가 간 수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권대리가 정윤에게 말한 내용을 전했다. 수화가 혼나거나 미움받는 행동을 하지 않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오히려 수화에게 다시 한번 정윤에 대한 적개심을 불피웠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혜가 자신의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혜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수화는 점심시간을 함께한 이과장과 지혜에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았다. 수화와 지혜는 이과장에게 우편물을 가지러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따로 쉬는 시간을 가졌다.


"크리스마스에는 뭐해?"


"친구랑 놀기로 했어."


"어디에서?"


"합정 쪽에서?"


"오! 우리도야!"

"놀다가 시간 맞으면 보자"


수화는 연말이 되도록 남자친구를 만들지 못해 외롭다며 지혜에게 크리스마스 일정을 물었고 시간이 맞으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화의 마음은 다시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날 퇴근길 지혜는 수화에게 인형 키링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거 봐~정윤 씨가 줬어."


"정윤씨가?"


"응. 누르면 캐럴도 나와~"


"와.. 이 정도면 사랑이네, 사랑이야"

"내 친구 중에 정윤씨랑 성격이 비슷한 사람 있는데 그런 사람이 선물 준 거면 찐이야"


"그래?"


수화는 자랑하는 지혜에게 맞장구치기는 했지만 키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혜와 헤어지고 동네에서 유명한 힙한 소품샵에 들러 카드를 골랐다. 지혜와 사적인 시간과 얘기가 많아지면서 그녀가 마음을 담은 편지 선물을 제일 좋아한다는 것을 들어 연말맞이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다. 정윤은 수화의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화는 정윤의 행동 하나하나에 파생되어 움직였다. 지혜의 관심을 독점하고부터는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았고, 지혜 때문에 퇴근이 늦어질 때면 보채기도 하며 그녀의 마음을 얻기위해 했던 노력들이 귀찮아지고 있었지만 정윤의 키링은 꺼져가는 불씨에 바람이 불게 했다.




#견제 #무관심 #혼자가되는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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