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훔친 자존감 #15

얽히고 설킨 이유

by 문화

지혜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사무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감도 잡을 수 없었고 혼란스러웠다. 이어 수화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괜찮냐는 그녀의 메시지는 진심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할 말이 없어 수화의 메시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어? 지혜씨 먼저 왔네"


"뭐 먹었어~~"


"한팀장님이 맛있는 거 사주셨어?"


사무실로 돌아온 박대리와 권대리가 지혜를 보고 말을 걸었다.


"그냥 파스타 먹었어요"


"아~~"


그 순간 관리팀 팀장이 들어와 대화는 끊겼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정윤은 칫솔을 챙겨 자리를 떴고 앞서 가는 지혜의 옆에 섰다.


"양치하러 가?"


"네"


"..?"


"왜 그래?"


"뭘요?"


"...?"


정윤과 지혜는 화장실에서 침묵을 유지한 채 양치를 했다. 지혜는 거울을 보는 듯 마는 듯 옆에 선 정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양치에만 집중했다. 의아한 정윤은 양치만 하다 입을 헹구고 먼저 자리로 돌아갔다. 뒤늦게 사무실 자리로 돌아가 앉은 지혜는 정윤의 메시지를 받았다.


'무슨 일 있어?'


'뭐가요'


'무슨 일 있는 거 같아서'


'할 말 없어요'




수화는 자리에 앉아 온종일 안절부절못했다. 손을 모으고 모니터 쪽으로 몸을 기대어 지혜의 답장만 기다렸다. 그런 모습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띌 만큼 튀었다.


"수화씨, 무슨 일 있어?"


맞은편에 앉은 과장이 오다가다 수화를 보고 말을 걸었다.


"네? 아니요"


"그럼, 우리 이거 연락처 리스트업 좀 해줄래요?"

"바뀐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서"


"아.."

"네..."


수화는 업무에 집중하려 했지만 머릿속엔 온통 지혜의 모습으로 가득 차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답장이 없는 그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퇴근길 뿐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린 퇴근 시간, 회사 건물 앞에서 여느 때처럼 지혜를 기다렸다. 정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수화는 지혜를 보고 다가갔다. 지혜는 그녀를 본체만체 앞만 보고 걸었다. 수화는 말없이 지혜를 따라 걸을 뿐이었다. 항상 수화와 헤어지던 길에서 조차 지혜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걸어 집으로 향했다.




수화는 그날 밤, 불안 속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음날 출근길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막 말린 부스스한 머리로 출근길 지혜를 마주치는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지혜는 여전히 냉기가 흘렀고 수화를 의식하지 않고 회사로 향했다. 수화는 영업팀 사무실로 올라가 한숨만 내쉬었다. 모든 것이 망쳐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날 점심시간 역시 지혜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혜의 연락만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화에게 영업팀 팀장은 점심 먹으러 가지 않느냐며 물었지만 수화는 다녀 오라는 말만 전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저는 나갑니다'


아침부터 냉랭했던 지혜는 정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혜는 정윤과 같은 사무실에 있는 만큼 점심시간을 비슷하게 보냈던지라 먼저 일어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윤은 잘 먹고 오라는 답을 보냈다. 여전히 지혜의 변한 태도가 무엇 때문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지혜는 회사 근처 브런치 카페에 들어가 샐러드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 점심시간은 혼자 보내고 싶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자신이 보아왔던 정윤의 진짜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그런 말을 전한 수화는 무슨 의도인지, 모두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매일 볼 수밖에 회사에서 이렇게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나고 우울했다. 모두와 잘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어디예요?'


수화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혜는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존댓말로 바뀐 수화의 메시지에 거리는 유지하더라도 분위기는 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불편함이 전해오는 것도 전해지는 것도 싫었다.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고 자리로 돌아간 지혜에게 정윤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할 얘기가 있다는 그녀의 메시지에 지혜는 아무런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혜는 할 얘기가 없다는 답장을 보냈다. 관리팀 사무실에서 정윤과 지혜의 냉랭한 공기가 다른 직원들에게도 느껴질 만큼 퍼지고 있었다. 평소 같지 않은 둘의 말투와 행동들이 주위 직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얘기 좀 해"


"무슨 얘기요"


퇴근길 정윤은 지혜를 따라나서며 그녀를 잡았다.


"계속 툴툴대잖아"


"하.."

"그럼 잠깐만요"


지혜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먼저 가"

"나 오늘 정윤씨랑 가"


퇴근길 기다리고 있을 수화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보냈다. 정윤과 지혜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벗어나 들어갈만한 가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정윤은 한적해 보이는 호프집을 가리켰다. 지혜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따라 들어섰다. 퇴근시간이기는 하지만 저녁시간이었던지라 아직 호프집에는 둘 뿐이었다. 정윤은 지혜에게 고르라며 메뉴판을 건넸고 지혜는 맥주 한잔씩이면 충분하다는 의사를 표했다.


"요즘 왜 그래?"

"나한테 뭐 화나는 일 있어?"


지혜가 정윤을 마주 보며 잠시 말을 골랐다. 그새 그들 앞에 생맥주 두 잔이 놓였다. 지혜는 목을 축일 겸 맥주를 들고 마셨다. 목을 축인 알코올의 시원함이 지혜가 말문을 틀 수 있도록 윤활유가 된 듯했다.


"수화씨한테 왜 제 얘기했어요?"


"아..!"

"아, 그게 나는 잘 지내자고 한 건데.."


"뭐라고 했는데요?"


"그냥"

"우리가 사이가 안 좋아서 네가 힘들어하는 거 같으니까"

"잘 지내자고.."


"그게 다예요?"


"응"


"진짜예요?"


"응!"


"뭐가 됐든."

"뒤에서 그런 방식을 취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아.."

"그게.."

"미안"


"그럼 할 말 끝났죠?"


"나는 우리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힘든 적 없고요"

"왜 혼자 추측하세요?"

"저한테 물어봤어야죠"


"응.."


"그럼 이제 다 얘기 다 했어요?"

"이거 마시고 가죠"


"응.."

"미안"

"근데.."


지혜는 수화의 정윤이 했다는 말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믿었던 만큼 굉장한 실망감을 얻은 상태였다. 주문한 생맥주 500cc를 마저 마시며 그녀와의 침묵을 지켰다.




점심시간에 이어 퇴근시간만 기다리던 수화는 울리는 핸드폰에 지혜의 이름이 뜬 순간 반갑고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받은 통화 내용은 정윤과 갈 테니 먼저 가라는 말이었다. 왜 정윤과 가지? 불안감이 다시 엄습해 오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혜에게 왜 정윤과 가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날 저녁도 수화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불 꺼진 방에서 새우잠을 취했다. 얼마나 잤을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든 수화는 새벽부터 눈을 떴다. 다시 자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출근 준비를 하려 욕실로 향했다. 뿌예진 욕실 거울을 닦으니 정수리에 올라온 새치가 눈에 띄었다. 염색을 좀 할까.

다음날 출근길에도 수화는 먼저 정류장에 도착해 지혜를 기다렸다. 지혜는 오늘도 덜 말린 긴 머리를 날리며 정류장을 향해 오고 있었다. 수화는 지혜가 가까이 다가오자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하고 몸짓으로 인사를 했다. 자신보다 키가 큰 지혜를 올려다보지 못하고 먼발치 땅만 보다 한 번씩 그녀를 흘깃 보았다. 버스에 올라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도 지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수화는 연신 눈치만 보다 사무실로 들어섰다. 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 사무실에서 사용할 물주머니를 챙겨 왔다.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채워두고는 사무실을 나가 카페로 향했다. 신메뉴라는 음료를 주문하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메시지 창을 열어보아도 기다리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아침마다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지혜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 sns를 둘러보기도 하고 한 번씩 영업팀 직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수화야~오늘 점심은?"


하나 둘 점심을 먹으러 움직이자 한팀장이 수화에게 말을 걸었다. 매번 점심시간보다 일찍 나서던 수화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자리를 지키자 신경이 쓰였던 터였다.


"...."


"지혜는?"

"혼자 먹냐?"


"별로 배가 안 고파서요"


"같이 나가자"


"아니에요. 먼저 가세요"


직원들이 다 나가고 나서야 수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베이커리가게에서 샐러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으로 sns와 유튜브를 보며 샐러드를 다 먹고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지만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후에는 밀린 일을 해보려 올렸던 결재문서를 다시 훑어보았다. 틀린 내역을 수정하고 권대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쌓아왔던 질문들과 점심 안부를 물은 장문의 메시지에 권대리는 하나하나 답을 해왔다. 그리고 이어 예상치 못한 권대리의 질문이 돌아왔다.


'근데 수화씨~ 정윤씨랑 지혜씨 무슨 일 있어?'


권대리는 수화가 입사 후 정윤, 지혜와 점심을 먹으며 셋이 어울렸던 기억뿐이라 수화가 자리를 옮긴 후부터는 그들의 상태를 알리가 없었다. 수화는 둘 사이 역시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지혜씨가 정윤씨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거 같아요..'


'뭐?'

'정윤씨가 지혜씨 괴롭혀?'


'아.. 그게..'

'제가 얘기했다고 하지 마세요..'


수화는 그저 권대리의 질문에 답한 것뿐이었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혜씨, 잠깐 따로 얘기 좀 할까?'


지혜는 점심을 혼자서 보내고 무료한 오후, 업무 스케줄을 정리하던 중 권대리에게서 의아한 메시지를 받았다.


'네~'


지혜의 답을 확인한 듯 권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지혜는 권대리를 따라나섰다. 건물 로비까지 따라나선 지혜는 권대리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세요 대리님?"


"커피나 한잔 할까?"


"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둘은 마주 앉았다. 지혜는 영문을 모르는 듯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손을 녹였다.


"지혜씨"

"요즘 무슨 일 있어?"

"정윤씨가 괴롭혀?"


"네??"


"수화씨가 그러던데"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네???"

"그런 거 아니에요"

"수화씨가 무슨 말을 했는데요?"


"아니.."

"정윤씨때문에 지혜씨가 스트레스받는다고"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네????"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그냥 조용히 일만 하다가고 싶어요"

"신경쓰지 마세요"


"음..?"

"그래?"


"네!"

"정말이에요"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에요.."


지혜는 너무 당혹스럽고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커질까 간절하게 권대리를 만류했다. 권대리는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고 알 수 없는 체념을 한 채 지혜와 사무실로 돌아갔다. 지혜는 자리에 앉아 바로 수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어디 가서 얘기 좀 해'


'어디로 갈까?'


'전에 갔던 그 술집으로 가자'


'응!'




#스미어캠페인 #플라잉몽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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