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과 왜곡
집으로 들어간 수화는 어깨에 맨 가방을 내던지고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불 꺼진 방바닥에는 며칠 입다 던진 잠옷과 외출복이 널브러져 있었다. 어느 집단에서든 순간순간 만들고자 했던 상황들이 이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디서부터라고 종잡을 수 없는 뒤틀린 심보가 집까지 따라와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신경을 긁는 것들로부터 질 수 없다고 더욱 단단한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수화는 피곤한 기색으로 출근을 했다. 도저히 제시간에 출근할 수 없어 2시간 휴가를 사용하여 늦은 출근을 했다. 수화 옆자리의 영업팀 팀장이 출근한 그녀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수화야, 무슨 일 있어?"
"안색이 안 좋네"
"아니에요...."
수화는 옆자리의 거리에서만 간신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까 아침에 정윤씨한테 자리로 전화 왔었어"
"내가 오늘 반반차라고 얘기는 해뒀는데"
"그 퇴사한 윤정씨 사원증 반납해야 한다며"
"왜 말 안 했어? 계속 찾았다던데"
"윤정씨한테 연락하고 알았다더라, 그거 여기 있는 거"
"아... 네.."
"...."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네.."
"오늘 점심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음... 아니에요.."
"왜"
"기운도 없어 보이는데"
"오랜만에 맛있는 거 사줄게"
"먹고 싶은 거 생각해놔"
".. 저.. 저 혼자요?"
"응?"
"그럼?"
"..."
"지혜씨도 같이 먹으면 좋을텐데.."
수화는 잠시 머뭇거리다 팀장의 눈은 피한 채 읊조리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럼 지혜도 불러"
"정윤이도 부르던지"
"아...정윤씨는 점심 혼자 먹는 거 좋아하시던데..."
"뭐 그럼, 지혜랑 식당 골라놔"
"네.."
수화는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가며 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전화받을 수 있어?"
"응, 왜?"
"오늘 팀장님이 점심 사주신다고 하셔서"
"한팀장님이? 나도?"
"응"
"누구까지?"
"...."
"우리만.."
"알았어~"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지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윤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 한팀장님이 점심 사주신다고 하셔서"
"다녀올게요"
"응, 맛있게 먹어"
사무실에서 이미 전화통화소리를 들었던 터라 정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갑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한팀장님 왜 정윤씨만 빼고 밥 사줘~"
"나도 한팀장님한테 버림받았는데"
"정윤씨도야?"
"여기 한팀장님한테 버림받은 모임이야?"
"파하하"
지혜가 나가고 자리에 있던 박대리와 권대리가 농담 마냥 분위기를 풀었다.
"정윤씨는 오늘 뭐 먹어?"
"우리랑 같이 먹자"
"그럴까요?"
"그래, 오늘 과장님도 안 계시고"
"우리도 좀 멀리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자"
"네, 좋아요."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지혜야~ 네가 수화 좀 잘 챙겨줘~"
"사무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외로워 보이더라"
"친구 없어서"
"아, 팀장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수화가 한팀장의 말을 막으며 신경질을 냈다.
"왜"
"너 맨날 사무실에서 힘들어하잖아"
"그런 거 아니에요~!"
수화는 지혜 옆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멈추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커피 마실 거야?"
"한팀장님도 커피 드시겠어요?"
"아니야"
"둘이 쉬다 와~"
말을 멈춘 수화 대신 지혜가 한팀장의 질문에 말을 이었다. 한팀장은 사무실 방향으로 걸어갔고, 수화와 지혜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오늘 갑자기 왜 우리만 밥 사주신 거야?"
"아, 그냥 그냥"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대"
"정윤씨는 빼고?"
"너는 정윤씨는 왜 그렇게 챙겨?"
"뭐, 친하니까."
"둘이 친한 거 맞아?"
"김정윤이 널 위해 뭘 하는데?"
"김정윤은 너가 자기를 좋아하는 거래."
"바보래, 바보"
"뭐?"
"너가 자기를 좋아하는데 나 때문에 중간에서 너가 힘들어한대"
"그러니까 자기랑 잘 지내재"
"어이없어"
"난 상처받았어"
"무슨 말이야?"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어제 잠깐 나오라고 해서 얘기했었어."
"왜 둘이 뒤에서 내 얘기를 해?"
"어?"
"정윤씨가 확실히 그렇게 얘기했어?"
"어?.. 어.."
수화는 정윤과 나눈 얘기에 자신이 지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섞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혜가 이렇게까지 싸늘한 반응을 할 것이라는 것은 계산에 없었다.
"나는 들어가서 좀 쉴게"
"..."
수화는 멀어지는 정윤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당장 사무실로 가 정윤에게 확인을 할까 두려웠고 지혜의 영혼 없는 말투와 차가운 시선이 수화를 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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