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면
수화는 지혜의 연락을 받고 걱정 반 떨림 반으로 퇴근만 기다렸다. 지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퇴근 시간, 늘 기다리던 곳에서 지혜를 기다렸다. 무표정한 얼굴의 지혜는 수화를 발견했고, 그녀의 옆에 서 발길을 재촉했다. 지혜의 빠른 걸음을 따라 들어선 곳은 작은 이자카야였다. 2차 손님이 많은 가게인지라 지금 시각엔 수화와 지혜 단 둘 뿐이었다. 메뉴를 주문하기 전까지도 지혜는 말이 없었다. 메뉴판을 내밀며 지혜는 수화에게 물었다.
"뭐 마실래"
"난.. 아무거나.."
지혜는 메뉴판을 넘기며 소주와 짬뽕탕 하나를 주문했다. 이내 소주와 간단한 안주가 세팅되었고 지혜는 수화의 잔에 소주를 먼저 따르어 주었다. 수화는 지혜와 퇴근 후 종종 이자까야를 다녔지만 오늘처럼 무거운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지혜가 잔을 따르고는 먼저 잔을 비웠다. 그런 지혜를 보고 수화 역시 잔을 비우며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대고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정윤씨가 뭐라고 했다고 했지?"
"응...?"
"그때 네가 나한테 말한 거"
"아.. 그게.."
".."
"..."
"...?"
"...."
"왜 말 안 해?"
"묻잖아!"
"..."
"정윤씨는 그런 얘기한 적 없는 거 같던데"
"...!"
"다시 물어볼까?"
"흐으윽"
"흐엉... 흑.. 흑"
"흐엉"
테이블 쪽으로 몸을 움츠린 수화는 지혜의 격해지는 톤에 울음을 터트렸다. 지혜는 울음을 터트린 수화를 보며 더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수화는 울음을 터트리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을 한 거 같은데"
"정확한 말은 기억 안 나.."
"흑"
"하.."
수화는 울먹거리다 잔을 채우고는 바로 입에 털어 마셨다.
"미안해에..."
"흐윽흑...."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지혜는 한없이 울먹거리는 수화를 더이상 몰아붙일 수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흐느끼며 떨고 있는 그녀에게 더 들을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지혜 역시 직접 잔을 채워 한번에 털어 마셨다. 마음을 풀어야 할 사람은 지혜 본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퇴사하지 않는 이상 매일 같이 일을 하고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질질 끌어봤자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이었다.
"하.."
"흐윽흑.. 흑.. 흑"
"그만 울어"
지혜는 수화의 잔에 소주를 따르어주며 진정시켰다. 수화는 채워진 잔을 다시 끝까지 비우고는 울음을 멈추었다. 지혜의 목소리 톤이 다시 돌아온 듯했다. 잔을 비우는 수화를 보며 지혜는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지혜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상황이 일단락된 것 같았다. 주량이 센 편이 아니었던 수화는 조금씩 정신이 희미해지며 취기로 자리를 유지했다. 팔과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흐물 대기 시작했다.
"이제 마음 풀린 거야?"
"한 번만 봐주는 거야"
지혜와 마음을 푼 것 같은 느낌에 수화는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술잔을 비웠고, 울었던 상황은 온 데 간 데 없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혜는 한껏 취기가 올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컵을 쳐대는 수화를 보고 카운터로 가 계산을 마쳤다.
"가자"
"더 마시자~~"
"일어나"
수화는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겉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자 지혜는 그녀를 도와 옷을 입혔고, 부축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더 놀자니까~~~"
"더 놀고 싶은데~~"
"다음에"
"어휴, 무거워"
"택시 불러야지"
"아~으응~"
"먼저 불러"
"응~~"
수화는 핸드폰을 들어 어플로 택시를 불렀다.
"언제 와"
"봐봐"
지혜는 수화의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그녀를 부축한 채 한 손으로 겨우 택시를 불렀다.
"히히~~"
"너는 제일 잘하는 게 뭐야~~?"
"응?"
"나는 피해자코스프레를 제일 잘해~~~"
"...?"
#사과를도구처럼 #나르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