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수일지

스타트업

by 그런남자

과거에는 '벤처'라고 불리던, 지금은 너무나도 많아지고 흔해진 기업의 한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벤처'라는 말에서 '스타트업'으로 용어의 변경이 있던 시점은 대략 2008년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되던 시점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정확하게 구분할 순 없지만 '벤처'는 pc를 기반으로 했다면 '스타트업'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의 보급과 활용이 지금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스타트업' 역시 pc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도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30대 중반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약 10여 년 동안 1년 이상 재직했던 곳이 2곳 정도에 불과하다. 모두 1년이 되기 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2곳 역시 사라졌거나 지금 사라져 가는 중이다. 즉, 90%가 넘는 비율로 내가 재직했던 곳들은 망했다. 따라서 가장 최근에 퇴사를 한 곳을 제외하곤 난 근 10년 동안 모두 자발적 퇴사가 아닌 타발적 퇴사를 했었다. 그리고 타의에 의해서 백수가 되었었다. 길게는 6개월, 짧게는 2개월 정도. 나의 습관성 백수생활의 이유의 8할 이상이 내가 스타트업 바닥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근데 '내가 큰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10년 넘게 잘 다녔을까?'를 생각해 보면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답을 할 수도 없을 것 같기에 나머지 2할은 나의 성격적 결함이라고 하겠다.


스타트업이라 불리는 곳에 재직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타트업에 대해 막연한 동경 같은걸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매체에 보도되는 곳들은 그곳의 장점들 위주로 보도가 되고 그런 이야기들을 직접이 아닌 간접으로 접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좋은 복지들, 수평적인 구조 그리고 종종 보도되는 생각보다 높은 보상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많이 다르다. 스타트업계에서 나름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곳들을 부르는 명칭이 '유니콘'인 것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하지만 동경하는 동물이니까.


스타트업 바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면, 스마트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앱'이라고 하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모든 앱들을 스타트업에서 만드는 건 아니지만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 본인의 폰 잠금 화면을 열고 본인의 폰에 설치되어 있는 앱들을 보면 아무리 많아봐야 100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앱들 중에서 그래도 자주 사용하는 앱들은 몇 개나 있을까? 그리고 이번 달에 새롭게 설치한 앱은 몇 개나 있을까? 자주 사용하는 앱들은 대충 잡아도 10개 정도, 새롭게 설치한 앱은 아마 없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의 수는 100만 개가 넘는다. 이것만 봐도 스타트업의 존속이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음식을 파는 사람을 음식이 잘 팔려야 하고, 자동차를 파는 곳은 자동차가 잘 팔려야 운영이 된다. 앱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사람들이 앱을 많이, 자주 사용해야지만 그나마 유지가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투자라는 것을 받지만 투자는 아무한테나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고정비-임대료, 인건비-는 계속 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현금이 없게 되면 망할 수밖에 없다.


처음 스타트업 바닥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나 역시 잘 몰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 모든 상황들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성공은 고사하고 '안 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고 있고 여전히 '안 망하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가 강요해서 이 바닥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한다. risk 가 있는 곳을 선택했으면 그 risk를 hedging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에.


물론, 스타트업이 잘 되면 꽤 높은 수준의 보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창업자 혹은 창업자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초기 멤버들에게도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난 그런 것을 바라고 계속 스타트업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묵묵히 있는 것뿐. 나의 삶의 모토 중 하나인 '열심히' 하지 않고 '그냥' 하고 있는 것뿐.


그렇게 중간중간에 지속적으로 백수생활을 하면서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것 같다.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연애는 가능하겠으나 결혼은 거의 불가능한 삶을 계속 살면서.